

일반인이 보기에 ‘월 310만 원, 하루 9시간 근무, 월 8회 휴무’라는 조건은 꽤 매력적으로 보이죠? 신입 직원이라면 아마 그 정도 근무면 적당한 급여와 휴식 균형이 맞는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이 조건의 진실을 파헤치면 생각보다 복잡하고, 심지어 가혹한 현실이 숨겨져 있습니다.
런던베이글뮤지엄(런베뮤)에서 고(故) 정효원 씨가 맺은 근로계약서는 바로 그런 ‘숨은 함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인데요. ‘고정 OT(over time)’ 계약이라고 불리는 이 방식은 기본급에 일정 시간분의 연장근로수당·야간근로수당·휴일근로수당을 포함시키고, 추가 근로가 있을 때에만 가산수당을 더 지급하는 계약입니다.
언뜻 보면 ‘315만 원’이라는 금액이 충분한 보상이길래 직원은 안심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하루 10시간 이상 일을 시킬 수 있는 장시간 노동 친화적 계약입니다. 이는 고용주가 ‘이미 포함된 수당’ 이상의 추가 근로를 강요하기 수월한 구조가 되어버린 셈이죠.
더 문제는, 시급을 따져보면 최저임금 수준인 1만 32원으로 책정되었고, 고정 OT 수당은 법적으로 정해진 연장·야간·휴일 근로 수당 산정 기준보다 낮다는 점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엄청난 혜택처럼 보이나 실질은 자칫 ‘포괄임금제’의 변형으로 오랜 시간 노동을 합법화시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과를 낳습니다.
채용공고와 실제 근로계약서 사이의 불일치 문제는 상당히 심각한 이슈입니다. 채용절차법 4조 3항에 따르면 “구인자는 근로조건을 불리하게 변경할 수 없다”는 엄한 규정이 있지만 이 사건에서는 채용공고에 고정 OT 조건 명시가 없고, 근로계약서에는 해당 조건이 포함되어 있어 법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즉, ‘고정 OT 계약’ 자체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노동자들이 조건을 오해할 가능성이 크지만, 이는 불법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사각지대인 셈입니다. 노동자는 엄연히 ‘면접 과정에서 설명했다’는 사용자 말을 믿고 계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죠.
결과적으로, 이런 계약 형태는 장시간 노동을 유도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연장·야간·휴일에 대한 수당을 미리 월급에 포함시키고 나면 사용자는 당연히 그만큼 일을 더 시키려는 압박을 느낍니다. 고정 OT 계약에 대해 정부도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고, 사용자 역시 노동시간 단축에 진지하게 대응해야 할 시점입니다.
혹시 비슷한 조건의 근로계약서를 받고 속았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더 꼼꼼히 살펴보세요. 계약서 한 줄, 시급 몇 원이 계약 조건을 결정짓습니다. 작은 숫자 하나에 노동시간이 늘어나고, 건강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