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회사원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 및 전달 역할을 하며 여러 피해자로부터 현금을 수령하고 위조된 서류를 교부한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에서는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범죄수익은닉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었으나, 항소심에서는 A씨가 보이스피싱임을 인지했거나 관련 범죄에 대한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해당 혐의들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또한,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위반 혐의에 대한 검사의 항소도 기각되어,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되었습니다.
피고인 A씨는 2020년 9월경 인터넷으로 대출을 알아보던 중 'D카드 E 대리'라는 사람으로부터 채권추심 업무를 제안받았습니다. A씨는 근로계약서 작성이나 면접 없이 신분증 사진을 전송하는 방식으로 채용되었고, 모든 업무 지시를 메신저로 받았습니다. 'E 대리'의 지시에 따라 A씨는 2020년 10월 11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과 평택 등지에서 M으로부터 1,000만 원, N으로부터 690만 원, F으로부터 1,250만 원, G으로부터 2,560만 원 등 총 5,500만 원의 현금을 피해자들로부터 직접 수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E 대리'가 보낸 '대출상환확인서'나 '완납증명서'를 출력하여 피해자들에게 교부하기도 했습니다. 수거한 현금은 'E 대리'가 알려준 타인 명의 및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100만 원 단위로 나누어 무통장 송금했으며, 수당으로 약 800만 원을 받았습니다. 피해자들은 'T카드', 'U저축은행', 'V캐피탈', 'Y저축은행' 등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원의 거짓말에 속아 돈을 건넨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이와 같은 행위로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피고인 A씨가 보이스피싱 범죄임을 알고 조직원들과 공모했는지 여부와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범죄수익은닉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또한, A씨의 타인 명의 무통장 송금 행위가 금융실명거래법상 '불법재산의 은닉, 자금세탁행위, 그 밖의 탈법행위' 목적의 금융거래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논의되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원심 판결 중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피고인 A에게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범죄수익은닉의규제및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원심에서 무죄로 판단된 금융실명거래및비밀보장에관한법률위반 혐의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기각하여, 해당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인식하였거나 미필적으로나마 이를 용인하고도 범행에 가담했다는 점, 또는 위조된 문서를 사용할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고인이 채용 과정의 비정상적인 측면이나 과도한 수당 등으로 인해 업무에 불법적인 요소가 개입되어 있다고 의심했을 수는 있으나, 그 의심이 보이스피싱이라는 구체적인 인식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고 오히려 탈세 등 다른 불법적 요소로 오인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피고인이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업무 내용을 숨기지 않고 태연하게 공개한 점, 렌트카를 이용하고 피해자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등 신원이 드러날 수 있는 행동을 한 점 등은 보이스피싱 범행을 인식한 사람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검사의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의 고의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무죄를 선고하며, 사기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 이상 사문서위조 및 범죄수익은닉 혐의 역시 인정될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형사 재판에서 핵심적인 '고의'의 입증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률상 '미필적 고의'는 범죄 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를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불법적인 일일 수 있다는 막연한 의심만으로는 범죄의 고의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습니다. 검사는 피고인에게 범죄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가 있었다는 점을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증명해야 하며, 만약 증거가 부족하여 의심이 가는 상황이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관련 법률:
의심스러운 채용 제안은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정식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 신분증만 요구하거나, 면접 없이 비대면으로 채용을 진행하는 경우는 보이스피싱 등 범죄와 연관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높은 수당을 미끼로 단순한 업무(현금 수거 및 전달, 무통장 입금 등)를 제안하는 경우 역시 범죄 연루 가능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을 사칭하여 현금을 직접 전달하라고 하거나, 특정 계좌로 송금하라고 요구하는 경우는 100% 보이스피싱 수법이므로 절대 응하지 말고 즉시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합니다. 타인 명의로 금융거래를 하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문서(완납증명서 등)를 전달하는 행위는 범죄에 직접 가담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불법적이라고 의심이 든다면, 단순히 '탈세' 정도로 생각하기보다는 보이스피싱 등 더 심각한 범죄일 가능성을 열어두고 즉시 업무를 중단하고 신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신원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행동을 하더라도 범죄 가담 사실이 인정되면 처벌을 피하기 어려우니, 불법적인 업무에는 애초에 가담하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