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원고인 주식회사 J가 피고인 주식회사 D(상호 변경 전 주식회사 E)에게 절수기 물품대금 중 미지급된 5억 원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공급계약을 적법하게 해지했으며, 이에 따라 물품대금 지급 의무를 거절할 수 있다는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2023년 6월 13일 '친환경 재활용 중수도 절수기' 5,000대를 1대당 100만 원(총 50억 원)에 공급하는 물품공급계약과 피고가 위 절수기 판매를 원고에게 위탁하는 판매위탁용역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다음 날인 2023년 6월 14일 피고는 K, M과 K가 피고의 경영권을 인수하고 피고에게 절수기 관련 사업 자금을 투자하는 내용을 담은 양해각서를 체결했습니다. 피고는 물품공급계약에 따라 원고에게 계약금 10억 원 중 5억 원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K가 피고에 대한 유상증자 납입금 50억 원을 이행하지 않아 양해각서가 실효되었고, 이에 피고는 물품공급계약의 조건이 불성취되었다고 주장하며 나머지 물품대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원고는 미지급된 물품대금 5억 원의 지급을 요청하며 2023년 9월 6일 피고에 대한 파산 신청을 했으나, 6일 만인 2023년 9월 12일 이를 취하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나머지 물품대금 5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가 원고와의 절수기 물품공급계약을 적법하게 해지할 수 있는 사유가 발생했는지, 특히 관련 양해각서의 실효 및 원고의 파산 신청이 계약상 신뢰관계를 파괴하여 계약 해지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며,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물품공급계약이 피고, M, K 사이에 체결된 양해각서를 전제로 한 것이며, K가 유상증자 납입을 하지 않아 양해각서가 실효됨으로써 물품공급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원고가 물품대금 미지급을 이유로 상장회사인 피고에 대해 파산 신청을 한 행위는 비록 취하되었으나 피고의 신용을 훼손하여 계속적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를 파괴한 부당한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는 계약서 조항에 따라 이 사건 공급계약을 적법하게 해지할 수 있으며, 원고가 절수기 납품 의무를 이행했거나 이행 제공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는 나머지 5억 원의 물품대금 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계속적 계약의 해지와 그 효력에 대한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계속적 계약의 해지 (대법원 2013. 4. 11. 선고 2011다59629 판결 등 참조): 계속적 계약은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를 기초로 하는 것으로, 계약 존속 중 당사자 일방의 부당한 행위 등으로 인해 계속적 계약의 기초가 되는 신뢰관계가 파괴되어 계약의 존속을 기대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상대방은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장래에 향하여 효력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피고에 대해 부당하게 파산 신청을 함으로써 상장기업인 피고의 신뢰를 훼손하고 신뢰관계를 파괴했다고 보아 피고의 계약 해지를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민법 제550조 (해지의 효과): 계약의 해지는 장래에 대하여 그 효력을 잃습니다. 이는 계약 해지 시점부터 계약의 효력이 소멸되고, 그 이후로는 계약 내용에 따른 새로운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다만, 해지 이전에 발생했던 권리·의무 관계는 청산 의무 등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가 해지 의사표시가 담긴 준비서면을 원고에게 송달함으로써 2024년 10월 16일 이 사건 공급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었다고 보았습니다.
해지 후 선이행 의무의 이행 거절 (광주고등법원 2020. 7. 15. 선고 2019나25331 판결 참조): 일방 당사자가 선이행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던 중 계약이 해지되면, 계약의 효력이 장래에 향하여 소멸되어 상대방으로부터 더 이상 반대급부를 이행받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 경우 계약 해지 전에 이미 발생한 선이행 의무를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공평과 신의칙에 반할 수 있으므로, 선이행 의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선이행 의무 이행을 구하는 당사자가 계약 해지 전에 반대급부를 이행했거나 이행 제공을 했음을 증명해야만 그 이행거절권이 상실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절수기 1,000대에 대한 납품 의무를 이행했거나 이행 제공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었으므로, 피고는 나머지 5억 원의 대금 채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불안의 항변권): 피고는 상대방인 원고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536조 제2항에 따라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지만, 법원은 피고의 계약 해지 항변을 먼저 받아들였으므로, 이와 선택적 관계에 있는 불안의 항변권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계약 체결 시 다른 계약(예: 투자 계약, 경영권 양수도 계약)이 주된 계약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경우, 해당 조건의 이행 여부와 연동하여 계약이 무효화되거나 해지될 수 있다는 조항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속적 계약의 경우, 당사자 상호 간의 신뢰관계가 핵심이므로, 일방이 채무 이행을 압박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파산 신청과 같은 부당한 조치를 취한다면 이는 신뢰관계 파괴로 이어져 계약 해지의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계약 해지 사유가 발생했을 때는 계약서에 명시된 해지 절차와 조건을 정확히 확인하고, 해지 의사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고 적법하게 통지해야 합니다. 또한 선이행 의무를 지고 있는 당사자라도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된 후 상대방이 자신의 반대급부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거나 이행 제공을 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선이행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