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류/처분/집행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원고 A는 P 컨소시엄의 일원으로 회생 절차 중인 자동차 제조업체 L을 인수하는 투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에 따라 P 컨소시엄은 L 인수대금의 잔금을 특정 기한까지 예치해야 했으나 이를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L (현 G 주식회사)은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계약금 30억 4,858만 원을 몰취했습니다. 원고는 잔금 예치 기한 변경 합의가 있었거나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한 것이므로 계약 해지가 부당하며 설령 해지가 적법하더라도 계약금 몰취액이 과다하므로 감액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계약금 반환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잔금 예치 기한 변경 합의가 없었고 불안의 항변권 요건도 충족되지 않아 계약 해지는 적법하며 계약금 몰취 약정은 손해배상 예정액에 해당하지만 부당하게 과다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021년 11월 2일 P 컨소시엄은 회생 절차 중이던 L 주식회사와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이행보증금 155억 원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2022년 1월 10일 P 컨소시엄은 피고(당시 L 주식회사의 관리인)와 L 주식회사의 인수를 위한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기지급 이행보증금을 포함한 계약금 304억 8,580만 원 전액을 지급했습니다. 투자 계약에 따라 L 주식회사의 회생 계획안 심리 및 결의를 위한 관계인 집회 기일은 2022년 4월 1일로 지정되었고 이에 따라 인수대금 잔금 예치 기한은 그 5영업일 전인 2022년 3월 25일로 정해졌습니다. 2022년 3월 22일 피고는 P 컨소시엄이 투자 계약상 의무인 500억 원 대여 약정 중 200억 원을 기한 내에 이행하지 않았다며 시정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습니다. 그러나 원고나 P 컨소시엄은 2022년 3월 25일까지 인수대금 잔금을 예치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피고는 2022년 3월 28일 P 컨소시엄의 예치 의무 불이행으로 투자 계약이 자동 해제되었다고 통지하고 계약금 304억 8,580만 원을 피고에게 귀속시킨다고 통지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관계인 집회 기일을 2022년 4월 22일로 변경하기로 합의했거나 L 주식회사의 상장 폐지 여부 등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하여 잔금 예치를 거절한 것이므로 계약 해지가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계약금 몰취는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보아야 하며 그 금액이 과다하므로 감액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계약금 30억 원의 반환을 청구했습니다.
투자 계약에 따른 인수대금 잔금 예치 기한이 변경되었는지 여부, P 컨소시엄이 상대방의 이행 곤란을 이유로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여부, 투자 계약상 계약금 몰취 조항의 법적 성격이 손해배상 예정인지 위약벌인지 그리고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여 감액되어야 하는지 여부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P 컨소시엄과 피고 사이에 인수대금 잔금 예치 기한 변경 합의가 있었다고 볼 증거가 없으며 잔금 예치 기한은 2022년 3월 25일이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회생 절차 내 M&A의 특성상 회생 계획안 부결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고 계약에 따라 투자금 반환을 위한 안전장치도 마련되어 있었으므로 P 컨소시엄이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하여 잔금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P 컨소시엄의 귀책사유로 인해 투자 계약이 해제된 것이 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약금 몰취 조항의 성격에 대해서는 계약 내용상 계약금 몰취 외에 별도의 손해배상에 대한 규정이 없고 몰취를 통해 모든 금전적 문제를 해결하도록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민법 제398조 제4항에 따라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 여부에 대해서는 피고가 P 컨소시엄의 자금 조달 능력 부족을 알았다고 보기 어렵고 P 컨소시엄이 잔금 납입에 대한 확실한 대책 없이 계약을 추진한 책임이 있으며 계약금이 인수대금의 10%로 일반적인 거래 관행에 부합한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볼 때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은 원고의 계약금 반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민법 제536조 제2항 (불안의 항변권): 이 조항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먼저 자기 채무를 이행하여야 할 경우에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자기의 채무이행을 거절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즉 계약에서 먼저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당사자가 상대방이 나중에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 명백히 예상될 때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법원이 L 주식회사의 회생 절차 특성상 회생 계획안 부결 가능성은 예측 가능했고 투자금 반환에 대한 안전장치도 있었으므로 P 컨소시엄이 불안의 항변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불안의 항변권이 인정되는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며 계약 체결 당시 이미 예상 가능했던 위험에 대해서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법리를 보여줍니다. 민법 제398조 제2항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이 조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은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명시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계약금 몰취 조항이 손해배상 예정액에 해당한다고 보았지만 그 금액이 부당하게 과다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감액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 여부를 판단할 때 채권자와 채무자의 지위, 계약 목적 및 내용, 예정액을 정한 동기, 채무액 대비 예정액의 비율, 예상되는 손해액, 거래 관행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민법 제398조 제4항 (위약금의 추정): "위약금의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약에 위약금 조항이 있을 때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는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본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위약벌(채무 불이행에 대한 제재금)로 인정받으려면 명확한 합의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계약서상 '위약벌'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계약의 내용과 기능을 볼 때 손해배상 예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계약서의 문구보다는 당사자의 의사와 계약의 전체적인 맥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계약 시 중요한 기한(예: 잔금 예치 기한)이나 계약 조건 변경에 대한 합의는 반드시 명확하고 공식적인 문서로 남겨야 합니다. 구두 합의나 추측만으로는 법적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특히 법원의 결정 권한이 필요한 사항(예: 회생 절차의 기일 변경)에 대해서는 당사자 간의 합의만으로는 변경이 어렵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가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의무 이행을 거절하는 '불안의 항변권'은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됩니다. 계약 체결 당시 예측 가능했던 위험이나 계약 자체에 손해 발생 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면 항변권이 인정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투자 대상의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만으로는 항변권 행사의 정당한 사유가 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계약서상 '위약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더라도 법원은 해당 조항의 전체적인 맥락과 실제 기능(별도 손해배상 청구 없이 모든 금전적 문제 해결)을 고려하여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손해배상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한지 여부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실제 손해, 예정액의 비율, 거래 관행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단순히 계약금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감액되지 않을 수 있으며 투자 규모나 예상 이익 등을 함께 고려하여 판단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계약에서는 계약금 등 위약금 조항의 법적 성격을 미리 파악하고 적정성을 검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규모 투자 계약에서는 자금 조달 능력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계약을 추진하여 발생한 손해는 전적으로 투자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