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학교법인 A가 운영하는 B대학교는 교육부의 대학혁신지원사업에 참여하며 한국연구재단과 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B대학교 총장의 과거 금품 수수 의혹이 제기되어 교육부가 한국연구재단에 통보했고 한국연구재단은 협약 및 관련 규정에 따라 B대학교에 사업비 감액을 통보했습니다. 이에 학교법인 A는 이 사업비 감액 통보가 행정처분임에도 행정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법률유보원칙 위반 재량권 남용 등으로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교육부는 2018년 대학재정지원사업 개편 계획에 따라 '대학혁신지원사업'을 계획했고 재정지원사업의 공정성과 투명성 제고를 위한 운영 매뉴얼을 마련했습니다. 2019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공고가 있었고 B대학교는 자율개선대학으로서 사업 신청 후 한국연구재단과 협약을 체결하여 31억 1,400만 원의 사업비를 배정받았습니다. 그러나 교육부 감사 결과 B대학교 총장 C(당시 D대학원장)의 과거 금품 수수 의혹이 발견되어 교육부는 이를 한국연구재단에 통보했습니다. 이에 한국연구재단은 사업관리위원회를 개최한 후 2020년 11월 18일 B대학교에 사업비의 약 30%에 해당하는 9억 3,420만 원을 감액한다는 통보를 했습니다. 학교법인 A는 이 감액 통보가 위법한 행정처분이라고 주장하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재단법인 한국연구재단이 학교법인 A에게 통보한 대학혁신지원사업비 감액이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법원은 원고 학교법인 A의 소송을 각하했으며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결정했습니다.
법원은 재단법인 한국연구재단의 사업비 감액 통보가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사건 사업 협약은 B대학교 총장과 한국연구재단이 대등한 당사자로서 체결한 공법상 계약이며 협약 내용에는 이미 대학의 부정 비리 사안에 대한 사업비 감액 규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둘째 대학혁신지원사업의 근거 법률인 구 고등교육법 제7조는 대학이 곧바로 재정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거나 사업비 환수 감액에 대한 구체적 규정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관련 매뉴얼이나 관리운영규정은 법령상 위임 근거가 없어 대외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규는 아니지만 협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어 당사자 간에 규범적 효력을 미칩니다. 셋째 사업비 감액 통보의 효과는 전적으로 협약이 정한 바에 따르며 한국연구재단이 감액금액을 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징수하거나 공법상 제재를 가할 법령상 근거가 없습니다. 따라서 한국연구재단의 통보는 우월적 지위에서 행하는 공권력 행사가 아닌 협약에 따른 사실 통보에 불과하므로 행정처분이 아니라고 보아 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소송은 부적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행정처분'의 개념과 '공법상 계약'의 구별이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행정소송법 제2조 제1항 제1호는 행정처분을 '행정청이 행하는 구체적 사실에 관한 법집행으로서의 공권력의 행사 또는 그 거부와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정작용'이라고 정의합니다. 법원은 행정처분이 되려면 행정청이 우월한 지위에서 일방적으로 행하는 공권력 행사여야 하며 계약관계의 일방 당사자로서 대등한 지위에서 그 계약에 근거하여 행하는 의사표시는 행정처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원고는 행정절차법 제21조 및 제22조에 따른 사전통지 및 의견 제출 기회 미부여와 법률유보의 원칙 위반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해당 사안을 행정처분이 아닌 계약으로 판단했기에 이러한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구 고등교육법 제7조는 대학혁신지원사업의 법령상 근거이지만 이 법이 대학에 직접적인 재정지원 신청 권리를 부여하거나 사업비 환수 감액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다는 점도 판결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국가나 공공기관과의 협약 또는 계약은 그 법적 성격을 면밀히 확인해야 합니다. 본 사례처럼 지원금 감액이나 환수 조항이 계약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면 이는 '행정처분'이 아닌 '계약'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이 아닌 다른 법적 구제 방안을 고려해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재정지원사업의 경우 관련 매뉴얼 기본계획 관리운영규정 등이 법규적 효력이 없는 내부 지침이라 하더라도 협약을 통해 계약의 내용으로 편입되어 당사자에게 구속력을 가질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대학의 주요 보직자 관련 비리가 발생하면 재정지원사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내부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