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한 환자 A씨가 치료 중 뇌경색이 발생하여 심각한 뇌 손상을 입자, 환자 A씨와 배우자 B씨는 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C를 상대로 뇌경색 진단 지연과 부적절한 치료, 그리고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총 11억 9천 4백만 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병원 의료진의 진료 과정에 과실이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원고 A씨는 2018년 9월 27일 호흡곤란으로 피고 병원 응급실에 내원하여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다음 날인 9월 28일 오후 2시경 호흡이 호전되어 기관발관이 진행되었으나, 이후 의식 상태가 기면 상태에서 혼돈 상태로 변하고 지시에 순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후 5시 50분경 심박수가 170~190회/분으로 빨라졌고, 오후 6시 14분경 신경과 협진이 의뢰되었으며, 오후 6시 50분경 뇌 CT 검사 결과 오후 7시 15분경 우측 중대뇌동맥에 뇌경색이 발생한 소견이 확인되었습니다. 의료진은 뇌 CT 검사 결과상 경색 발생 후 시간이 경과하여 정맥내 혈전용해술이나 동맥내 혈전용해술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시술 대신 항응고제인 크녹산 투여를 유지했습니다. 이후 A씨는 뇌경색으로 인해 뇌병변장애를 갖게 되었고, 원고들은 병원의 진단 및 치료 지연 과실과 설명의무 위반을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환자 A씨의 뇌경색 발병 후, 병원의 의료진이 뇌경색 진단을 지연하거나 부적절하게 치료했는지 여부, 의료 과정에서 환자나 보호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은 설명의무 위반이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즉, 병원 의료진에게 뇌경색 진단 지연, 치료상 과실, 설명의무 위반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법원은 피고 병원 의료진이 뇌경색 징후에 대한 추정 진단 및 그 후 조치 과정이 당시의 의료 수준에 비추어 합리적이었으며, 뇌경색 치료에 있어서도 환자 A씨의 상태와 뇌 CT 검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의학적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았습니다. 또한, 환자 A씨의 뇌경색이 병원의 침습적 의료 행위로 인해 발생했다고 볼 증거가 없으므로 설명의무 위반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병원의 의료 과실과 환자의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의료 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신체를 다루는 매우 전문적인 분야이므로, 의료진은 환자의 증상과 상황에 맞춰 '최선의 조치'를 해야 할 '주의의무'를 가집니다. 이때 최선의 조치라는 것은 의료 행위가 이루어질 당시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의학 상식'의 수준을 기준으로 판단됩니다. 환자에게 불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해서 무조건 의료 과실이 있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의료 과실을 주장하려면 의료진이 주의의무를 위반했음을 입증해야 하며, 그 위반이 환자의 손해 발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합니다. 의료 행위는 고도의 전문성을 띠기 때문에 일반인이 의료 과실과 인과관계를 밝히기 어려운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의료 과실 외에 다른 원인을 찾기 어려운 간접적인 사실들을 통해 의료 과실을 '추정'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좋지 않은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에게 무과실 입증 책임을 지우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와 당시의 의료 수준,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 방법을 선택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가집니다. 이러한 판단이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료진의 선택을 과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의료진의 '설명의무'는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관련이 깊습니다. 수술이나 침습적인 의료 행위처럼 환자의 선택이 중요한 경우, 환자에게 예상되는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여 스스로 의료 행위를 받을지 여부를 결정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중대한 결과가 의료진의 침습적 행위로 인한 것이 아니거나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 되지 않는 사안에 대해서는 설명의무 위반이 문제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의료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가 급변하는 경우 의료진은 당시의 의료 수준과 환자의 특정 상황을 고려하여 최선의 조치를 취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환자의 의식 변화나 새로운 증상 발현 시 의료진의 초기 판단이 '섬망'과 같은 다른 가능성에 근거한 것이 합리적일 수 있으며, 이러한 초기 판단이 곧바로 과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뇌경색과 같은 질환의 치료에는 '골든 타임'이 중요하지만, 환자의 기저 질환 상태나 뇌 손상 진행 속도에 따라 혈전용해술과 같은 특정 치료법의 적용 가능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뇌 CT 검사 결과 등 객관적인 의학적 소견을 통해 치료 적응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해당 치료를 시행하지 않는 것이 의료진의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또한 심방세동과 같은 심장 질환을 동반한 뇌경색 환자의 경우, 항혈소판제(아스피린)보다는 항응고제(크녹산) 치료가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설명의무 위반은 의료진의 '침습적 행위'로 인해 환자에게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주로 문제가 됩니다. 단순한 진단 지연이나 치료법 선택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고 해서 곧바로 설명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