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 · 의료
40대 남성이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여러 차례 방문했으나 적절한 진단과 조치를 받지 못하고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한 사건에서, 법원은 첫 번째 병원의 진단상 과실과 상급병원 전원 지연 책임을 인정하여 병원 운영자에게 약 4억 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했습니다. 반면, 두 번째 병원은 응급 상황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고 보아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망인 H은 2019년 7월 5일 복부 팽만과 통증으로 O의원에 내원했으나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7월 6일 L병원 신속진료센터를 방문하여 주사 치료를 받았지만 통증이 지속되었고, 7월 7일 다시 L병원에 내원해 전날과 동일한 주사 처방을 받았습니다. L병원 의료진은 망인에게 복부 통증을 호소한 지 3일이 되는 시점에도 혈액검사나 영상의학적 검사를 하지 않고 대증치료만 한 후 다음 날 내과 외래를 안내했습니다. 7월 8일 L병원 내과에 내원하여 혈액검사 결과 전신 염증 상태가 확인되어 N병원으로 전원되었습니다. N병원 응급실로 전원될 당시 망인의 활력징후는 정상 범위였고 의식은 명료했습니다. N병원 의료진은 복부 CT 검사를 통해 상부 담관 확장을 동반한 총담관 결석을 확인하고 결석 제거 시술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시술 대기 중 7월 8일 오후 5시 48분경부터 고열, 심한 빈맥, 빈호흡 등 활력징후 악화 소견이 나타나 중환자 처치를 받았고, 같은 날 오후 11시 9분경 총담관 결석에 의한 담도폐쇄 등으로 발생한 패혈증 쇼크가 직접 사인되어 사망했습니다. 이에 망인의 모친인 원고 J는 L병원과 N병원 의료진의 의료과실로 인해 망인이 사망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L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반복적인 복부 통증에 대해 적절한 진단(혈액검사, 영상의학적 검사 등)을 하지 않고 증상 완화 치료만 한 것이 의료과실인지, 그리고 상급병원 전원 조치를 지연한 책임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N병원 의료진이 망인의 전원 당시 상태에서 패혈증을 의심하고 즉시 응급처치를 하지 않은 것이 의료과실인지 여부입니다. 셋째, 위와 같은 의료과실이 망인의 사망과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는지, 있다면 피고들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등입니다.
법원은 피고 B이 운영하는 L병원 의료진에게 진단상 과실과 상급병원 전원 조치 지연으로 인한 의료과실이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L병원은 망인이 2019년 7월 7일 재방문했을 때 급성 담관염을 의심하고 혈액검사나 영상의학적 검사를 통해 정확히 진단하고, 상급병원으로 전원하는 등 적절한 조치를 했어야 함에도 이를 소홀히 하여 담관 결석증의 확인 및 처치가 지연되어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L병원의 특성(경증 질환자 1차 진료), 망인의 비전형적 증상 등을 고려하여 L병원의 손해배상 책임을 80%로 제한했습니다. 반면, 피고 재단법인 K이 운영하는 N병원 의료진에 대해서는 망인이 전원될 당시 패혈증을 의심할 만한 명확한 증상이 없었고, 당시의 의료행위 수준과 진료 환경을 고려할 때 최선의 조치를 다했다고 보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 B은 원고에게 407,856,123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피고 B은 원고에게 총 407,856,123원과 이 금액에 대해 2019년 7월 8일부터 2023년 3월 23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이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원고의 피고 B에 대한 나머지 청구와 피고 재단법인 K에 대한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민법 제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에 따른 병원 운영자의 손해배상 책임과 의료진의 '주의의무 위반' 및 '설명의무 위반'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1. 의사의 주의의무와 진단상 과실: 의료진은 환자를 진찰하고 진단할 때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과 상황에 따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최선의 주의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는 당시 임상의학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시인되는 의학 상식과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진단은 질병을 감별하고 치료법을 선택하는 중요한 의료 행위이므로, 의사는 신중하게 환자를 진찰하고 정확히 진단하여 위험한 결과 발생을 예견하고 회피하는 데 필요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L병원 의료진은 망인이 3일간 지속적이고 극심한 상복부 통증을 호소하며 재차 내원했을 때, 단순한 장염이 아닌 급성 담관염과 같은 담석성 질환일 가능성을 의심하고 혈액검사나 영상의학적 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진단했어야 하는 주의의무를 위반했습니다. 또한, 필요한 검사를 실시할 수 없는 여건이었다면 즉시 상급병원으로 전원을 권고해야 할 의무도 있었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아 진단이 지연되고 결국 망인의 사망에 이르게 된 인과관계가 인정되었습니다.
2. 민법 제756조(사용자의 배상책임): 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그 의료진을 고용하여 병원을 운영하는 자(사용자, 여기서는 피고 B)는 민법 제756조에 따라 피용자(의료진)의 불법행위에 대해 사용자 책임을 부담합니다. 이 사건에서 L병원 의료진의 과실이 인정되었으므로, L병원을 운영하는 피고 B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부과되었습니다.
3. 설명의무 위반: 의사의 설명의무는 수술 등 침습적인 의료행위나 중대한 결과 발생이 예측되는 의료행위를 할 때 환자에게 질병의 증상, 치료 및 진단 방법의 내용, 예상되는 위험성 등을 설명하여 환자가 스스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여 의료행위 수용 여부를 선택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L병원 의료진이 상급병원으로의 전원을 의뢰한 행위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문제 되는 사항이 아니므로, 설명의무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4. 손해배상 책임의 제한: 법원은 의료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정할 때, 의사 측 과실의 내용과 정도, 진료의 경위, 환자의 체질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손해 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L병원이 경증 질환자 위주의 1차 진료기관인 점, 망인이 급성 담관염의 전형적인 증상을 보이지 않은 점, 사망의 직접 원인인 급성 호흡곤란 증후군(ARDS)의 잠복기 등을 고려하여, L병원에 모든 손해를 부담시키는 것은 형평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보아 손해배상 책임이 80%로 제한되었습니다.
유사한 복부 통증 상황에서는 다음 사항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첫째, 통증이 지속되거나 악화될 경우, 단순한 증상 완화 치료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통증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정밀 검사(혈액검사, 복부 초음파, CT 등)를 요구해야 합니다. 둘째, 한 병원에서 적절한 진단이 어렵거나 치료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질 경우, 가능한 한 빨리 다른 병원이나 상급 종합병원을 방문하여 '세컨드 오피니언(두 번째 의견)'을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 병원 방문 시 증상의 발생 시점, 경과, 동반 증상(발열, 황달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의료진과의 상담 내용을 기록해두면 추후 상황 파악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급성 통증이 며칠간 지속된다면 단순한 소화 불량이나 장염이 아닌 담석, 췌장염 등 더 심각한 질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특히 혈액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높거나, 활력징후(혈압, 심박수, 호흡수, 체온)에 이상이 생기면 패혈증과 같은 중증 질환으로 진행될 위험이 있으므로 신속한 조치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