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은 약 7조 8000억원에 이르는 방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사업입니다. 2030년까지 6000톤급 구축함 6척을 전력화하는 계획으로 해군 전력 증강에 핵심적인 프로젝트로 손꼽힙니다. 그러나 이 사업은 설계단계에서부터 사업자 선정 방식에 대한 심각한 갈등과 이견 때문에 약 2년 넘게 표류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갈등은 기본설계를 담당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사이의 주도권 다툼에서 비롯됐습니다.
최근 대통령의 충남 타운홀 미팅에서 군사기밀 유출 전력이 있는 업체에 수의계약을 주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명확해졌습니다. 이에 수의계약 방식은 사실상 배제된 분위기입니다. 이에 따라 사업자 선정 방식의 선택지는 경쟁입찰과 공동설계로 압축되고 있습니다.
경쟁입찰은 시장 원칙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자연스럽게 이어받는 관례를 깨야 하는 부담이 존재합니다. 반면 공동설계 방식은 설계 및 건조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복수 업체가 함께 작업할 경우 '담합' 논란이 본격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방위사업청은 공정거래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한 상태로 그 결과가 사업자 선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공동설계 방식이 공정거래법상 담합에 해당할 수 있다는 지적은 단순한 법적 문제를 넘어 국가 예산의 효율적 집행과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직결됩니다. 법적으로 공정거래법은 경쟁 제한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나, 국방산업 특성상 다수 업체가 협업하는 구조가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담합으로 간주될 경우 사업 진행에 중대한 제약이 발생하며, 이는 사업 지연과 예산 낭비를 초래할 우려가 큽니다.
KDDX 사업 지연은 단순히 산업계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 안보 문제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신형 구축함을 지속적으로 진수하며 해상 전력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현 상황에서 한국 해군의 구축함 전력 공백은 심각한 전략적 위협 요인입니다. 따라서 이번 사업자 선정 결정은 단순 일정 조율을 넘어서 향후 국가 해양 방위 능력과 직결되는 사안으로 평가됩니다.
이번 방위사업추진위원회 결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을 넘어 향후 방위산업 전반의 사업자 선정 기준과 절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2년 넘게 사업이 표류하며 누적된 비용과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되 공정성과 기술 연속성을 확보하는 균형점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끝으로 법률적 시각에서 이번 사안은 대형 국책사업에서 입찰 방식과 담합 등의 법적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공정거래법과 계약법 등 관련 법령의 엄격한 준수와 현실적 적용 사이에서 정책 입안자와 사업 관계자들이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