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준위폐기물은 인체와 환경에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안전하게 격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처분 용기가 수십 만 년에서 백만 년 이상에 걸쳐 지속되는 부식 환경 속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이러한 장기 안전성은 처분장 설계와 운영에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그간 국내외 고준위폐기물 처분 용기 안전성 평가는 주로 해외에서 개발된 단일물리(single-physics) 모델에 의존해왔습니다. 이는 수질 화학 조성, 암반 환경, 온도 변동 등 처분장 주변 복잡한 물리·화학적 상호작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제한점이 있었습니다. 이에 국내 연구진은 지하수 유동, 화학 반응, 열 환경, 전기화학 반응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2차원 다물리(multi-physics) 모델을 개발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모델은 국내 지질 조건을 반영한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하며 특히 극저농도 산소 환경에서 10년 이상 축적된 장기 연구 데이터를 활용하여 부식 예측의 정밀도와 신뢰성을 크게 향상했습니다.
한국형 모델은 처분 용기 내부 산소가 약 2.3년 이상 존재하지 않아 부식에 미치는 영향이 빠르게 사라진다고 예측합니다. 이는 스웨덴, 핀란드, 캐나다에서 사용된 모델들이 수백 년 산소 잔존에 따른 과대평가와 대조되는 결과입니다. 또한 산소 잔존 기간은 스위스 몽테리 지하연구시설의 실측값과도 유사하여 현실에 부합하는 예측임을 확인했습니다.
처분 용기의 초기 몇 년간 부식 깊이는 9.3 마이크로미터로 국가 간 안전성 평가 기준에서 최상위 수준을 나타냅니다. 이는 고준위폐기물이 자연적으로 방사능을 잃어가는 데 소요되는 수백만 년보다 훨씬 큰 안전 여유를 제공합니다.
고준위폐기물에 대한 안전 관리 의무는 국가와 운영 주체에게 법적으로 엄격히 요구됩니다. 이번 한국형 부식 모델 개발은 국내 법률적 기준 마련과 방사성 폐기물 관리 정책 수립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기술적 검증 절차를 강화합니다. 법률상 처분 용기의 안전·적합성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장기 분쟁 가능성을 줄입니다.
향후 연구진은 이 모델을 3차원으로 확장하고 미생물 반응 등 추가적 변수도 포함하여 예측 정확도를 높일 계획입니다. 또한 권장순 처분성능실증연구부장이 언급한 바와 같이 태백 지하연구시설에서의 실증 연구를 통해 공학적 방벽 시스템 검증 및 설계에 본 모델을 적용하여 실제 처분 시설의 안전성을 계속해서 강화할 예정입니다.
더불어 법적 안전성 평가기준에도 이 같은 첨단 기술을 접목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환경 보호를 위한 사회적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