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부동산 PF 사업은 입지 선정, 지주 작업을 통한 신속한 부지 확보, 안정적인 PF 대출과 분양 성공 등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비로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물론 최초로 사업을 발굴한 시행사가 선두에서 진행하지만, 신용보강을 해준 시공사나 자금을 빌려준 대주, 즉 금융기관들도 PF 사업에 따른 리스크를 함께 부담합니다.
하지만 대주단이 영세한 시행사에게 순순히 돈을 쉽게 빌려줄 리 없습니다. 대주단은 대출금을 제때 회수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사업 진행이 곤란한 사유가 발생하면 즉시 대출원리금을 변제하도록 기한이익 상실 사유를 미리 설정합니다. 이러한 사유가 발생하면, 시공사가 PF 대출금 채무를 인수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결국, 시공사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백억 원에 달하는 PF 대출금을 대신 상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PF 대출금을 대신 상환한 시공사는 시행사에 상환액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변제자대위(민법 제481조)에 따른 구상채권이라고 합니다. PF 대출금을 변제한 시공사는 공사비 회수 문제가 아니라, 대주에게 변제한 대출원리금을 회수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입니다. 문제는 영세한 시행사가 PF 대출금을 상환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점입니다(물론 여력이 있었다면 시공사가 애초에 대주에게 대신 갚을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대위변제한 시공사는 시행사가 가진 자산 및 사업권을 모두 매각하거나 이를 이전받아 직접 부동산 개발 사업을 시행하여 권리를 행사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이는 대주단이 직접 시행사를 상대로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후자의 경우, 시공사는 시행사가 가진 자산과 사업권을 온전히 확보해야 합니다. 반대로, 시행사는 수년간 공들인 사업부지와 사업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의 이해관계 충돌은 필연적이며, 실제로도 다수의 법적 분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시행사가 가진 자산과 사업권을 온전히 확보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업권 이전은 각종 용역 계약에 따른 권리와 사업자 명의 또는 건축주 명의 등 서로 다른 성질의 권리 변동을 수반합니다. 따라서 시행사가 순순히 이전하지 않을 경우, 시공사로서는 개별 권리를 이전받기 위한 소송을 건건이 해결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순조롭지 않습니다(1건의 소송에 상소심까지 포함하면 몇 년씩 걸릴 수 있습니다).
다만, 골프장 등 체육시설의 경우 체육시설의 인수만으로 기존 체육시설업자와 회원 간 체결된 사법상 약정을 포함한 권리·의무를 승계하기도 합니다(체육시설법 제27조). 따라서 골프장을 인수받으면 회원권도 그대로 유지되고 각종 인허가를 새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규정이 없는 대부분의 사업에서는 복잡한 소송이 뒤따릅니다.
그래서 시공사는 시행사의 외형은 유지한 채 대주주(대개 시행사 대표이사)가 보유한 주식에 설정된 근질권을 실행해 주식을 한꺼번에 이전받는 방법을 고려하게 됩니다. PF 대출 시, 시행사는 대주들에게 주식 처분 승낙서와 양도증서를 교부하고, 분양대금관리계좌에 대한 예금근질권, 차주 또는 시행사 주식에 대한 근질권을 설정합니다. PF 대출금을 변제한 시공사가 대주의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시행사의 외형은 유지되므로, 자산이나 인허가 권리를 별도로 이전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시공사는 시행사의 잠재적 우발채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 심사를 받거나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과정 또한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우발채무는 예상치 못한 법적 분쟁이나 추가 채권자가 등장하는 등 시공사의 리스크를 크게 증가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비상장기업인 시행사의 주식은 자산, 부채, 사업권 등의 적정가치에 따라 평가됩니다. 이 과정에서 시공사와 시행사 간 평가 기준의 차이가 발생해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기 쉽다. 물론 질권 설정 계약에 따라 시공사는 시행사의 주식을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방법, 시기, 가격으로 처분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시공사가 주식을 액면가나 0원으로 평가해 이전받는 사례도 있으며, 대법원은 이러한 처분의 효력을 인정하면서도 초과액만 반환하면 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21.11.25. 선고 2018다304007 판결). 따라서 시행사는 주식을 빼앗긴 후, 시공사를 상대로 합리적인 가격의 차액 반환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시행사 경영진이 근질권 실행에 따른 주식 명의개서 청구에 불응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주주명부에 기재된 사람만이 회사와의 관계에서 의결권 등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주명부 기재나 명의개서 청구가 부당하게 지연되거나 거절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주주권 행사가 인정됩니다(대법원 2017.3.23. 선고 2015다248342 전원합의체 판결). 이로 인해 명의개서이행, 주주권 확인, 총회결의 부존재 확인, 무효확인, 주주명부 열람 및 등사 청구, 의결권 행사 허용 가처분 등 다양한 소송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소송은 시간과 비용 부담이 매우 크며, 사업 진행을 장기적으로 지연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려할 수 있는 방법은 시행사의 주식을 그대로 두고, 주주권 행사에 대한 포괄 위임을 받는 겁니다. 이 방식으로 의결권을 위임받아 실질적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지만, 주식을 이전받지 않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의결권 위임 계약은 민법상 위임 계약에 해당하므로, 민법 제689조 제1항에 따라 언제든지 철회가 가능합니다. 시행사 임원을 교체하려면 주주권 행사를 제한해 스스로 사임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주주권 포괄위임 철회로 인해 대응이 막힐 가능성이 있고, 이에 대비해 의결권 위임 당시에 의결권 위임 철회 금지 특약을 작성해 두어야 합니다.
이처럼 대위변제한 시공사가 권리를 행사하려 해도 시행사의 저항으로 쉽지 않습니다. 시공사가 일단 PF 대출금 채무인수를 약속하면, 그 후에 감당해야 할 몫이 막중합니다. 따라서 애초부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부동산 PF 사업은 단순히 수익 창출을 넘어, 법적·제도적 리스크를 포함한 복합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 고난도의 사업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