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 안 받아요, 사업비도 못냅니다.

분양신청 안한 조합원도 사업비를 내야 할까?

조합이 설립되고 구체적인 사업시행계획이 확정되면, 본격적으로 조합원 분양이 시작됩니다. 조합은 조합원들에게 정해진 기한 내에 분양신청을 하도록 안내합니다. 조합원들은 이제 팔부능선을 넘었다고 안도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원하는 타입의 순위를 적어 분양을 신청합니다. 하지만 모든 조합원이 분양을 신청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비사업 자체에 회의적이거나 분양받을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조합원도 있습니다. 토지나 그 지분이 지나치게 좁은 경우에는 처음부터 분양 자격이 부여되지 않을 수도 있지요.

어쨌든 사업이 된다고 생각해 조합 설립까지는 동의했지만, 분양을 포기하거나 철회하면 분양신청 마감일 다음 날부터 현금청산자가 됩니다. 그러면 조합과 부지를 감정평가하고 보상금액을 협의하게 됩니다. 만약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토지수용위원회에서 수용재결을 통해 보상가격이 정해집니다. 보상에는 지가 상승 등 개발이익이 반영되지 않고, 종전 가치에 따라 가격이 산정됩니다.

하지만 조합이 설립되고 분양신청을 받아 관리처분계획이 인가된 후, 조합원 분양이 완료되기까지 최소 5년 이상이 소요되며, 10년이 걸리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그 동안 측량, 설계와 같은 공사비뿐만 아니라 조합 임원의 급여, 판공비 등 조합운영비가 상당히 지출됩니다. 오랜 기간 사업을 함께 진행하며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조합은 현금청산자에게도 발생한 사업비 중 일부를 부담시키고 싶어 합니다. 동업하다가 갈라서더라도 비용을 분담하는 것이 일반적이듯, 현금청산자 역시 사업비 일부를 분담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반면, 현금청산자는 이제 사업에서 빠지는 상황인데, 비용 분담을 하는 것이 억울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관에 비용정산 규정 두었지만, 법원은 제동

법에서는 조합 등 사업시행자가 토지 등 소유자에게 정비사업에서 발생한 비용과 수입의 차액을 부과금으로 징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도시정비법 제93조 제1항). 여기서 '토지 등 소유자'라는 표현은 현금청산자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정비사업비는 원칙적으로 사업시행자인 조합이 부담하되, 비용과 수입의 차액에 한해 토지 등 소유자에게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한 겁니다. 이를 근거로 조합에서는 일반적으로 정관에 현금청산자에 대한 사업비를 부담할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의 A재건축조합은 정관에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습니다.

A조합의 조합원 B와 C는 분양 기간 내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결국 현금청산 대상자가 되었습니다. B와 C는 A조합을 상대로 보유 부동산의 청산금과 이자를 각각 11억 원과 8억 원 지급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반면, 조합은 정관과 규정에 따라 투입된 정비사업비를 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B는 2억 5천만 원, C는 2억 원이 공제되어야 하고, 조합이 대신 지급한 이주비 대출금의 이자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정비사업비를 공제할 수 없다고 판결했습니다(대법원 2021. 4. 29. 선고 2017두48437 판결). 공제한다는 정비사업비는 공사비, 판매관리비, 이주비 이자 등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조합의 자산으로 귀속되며, 현금청산자인 B와 C는 그 성과를 누리지 못하여 부당하다고 본 겁니다. 실제로 A조합이 주장한 정비사업비 대부분은 신축 분양 수익을 위해 지출된 비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큰 사업비를 공제한다면 조합원들이 분양의 포기를 자유롭게 결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물론 A조합은 B와 C가 비용 부담을 면제받을 경우, 그 부담이 조합에 전가돼 손해를 본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일반분양으로 전환된 물량은 조합원 분양가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분양할 수 있어, 실질적으로 손해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로 A조합이 짓고 있는 마곡지구 요지에 위치한 신축 아파트 84타입은 이미 4억 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비용 정산 정산은 가능, 정관은 구체적이어야

그렇다면 현금청산자가 비용 부담을 무조건 면제받을 수 있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법원 판례도 비용 정산 자체를 금지한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금청산자가 부담해야 할 비용의 발생 근거, 분담 기준, 내역, 범위 등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A조합처럼 추상적인 정관 조항만으로는 현금청산금에서 사업비용을 공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청주의 D재건축조합 정관은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현금청산자들에게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의 사업비를 공제했습니다:

이 규정은 A조합보다 더 구체적이지만, 대법원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대법원 2021. 9. 16. 선고 2020다261721, 2020다261738 판결). 정관에 구체적인 비용 항목과 부담 기준이 명시되지 않았고, 단순히 '사업비'라고만 표현된 것은 비용 부담의 합리적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현재의 일반적인 정관만으로는 현금청산자에게 정비사업비를 부담시킬 수 없습니다. 2024년 11월 서울시가 공포한 표준정관에서도 이를 구체적으로 반영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현금청산을 선택할 때에는 기존 정관을 꼭 살펴봐야 합니다. 정관에 청산에 관한 상세한 규정이 없으면 사업비 분담은 안심해도 됩니다. 반대로 조합원 분양이 저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조합은 대법원 판례 취지를 반영한 정관 규정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체크포인트

• 분양을 받지 않는 조합원은 현금청산되고, 개발이익이 제외된 현가로 보상받는다.
• 현금청산자는 사업을 부담해야 한다는 막연한 정관 규정을 두는 것만으로는 현금청산자에게 비용을 부담시킬 수는 없다. 현금청산자는 조합 정관을 확인하자.
• 현금청산되는 조합원에게 사업비용을 부담시키려면 정관에 판례의 취지를 반영한 상세한 조항 두어야 한다. 표준정관으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