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구역 내 소유자는 반듯한 판상형 구조와 입주민 편의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갖춰진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추진위가 제시한 조합설립인가 동의서에 날인하고, 조합원 명부에 이름을 올립니다. 물론 삶의 터전을 떠나 몇 년간 이주해야 하며, 사업 기간이 늘어나면 추가 분담금을 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신축아파트를 분양받으면 직접 들어가 살거나, 최소한 얼마 간의 웃돈을 받고 팔 수 있기에 소유자로서도 상당한 모험을 감수합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아무리 빨라도 7~8년, 강산이 한두 번 바뀌는 경우도 흔하므로, 사업 기간 동안 모든 소유자들의 마음이 한결같을 수는 없고 조합원이 바뀌는 경우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그러나 1개의 토지 또는 건축물을 반드시 1명이 소유하거나 1명에게만 이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속이나 가족 간 증여 등으로 다수가 지분을 공유할 수도 있고, 이혼으로 인해 부부 간의 공유가 단독 소유로 변경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지분 관계가 변경되면 소유자 수도 달라집니다. 만약 소유자가 사망하면 그가 보유한 토지 또는 건축물이 상속되고, 배우자와 자녀들이 민법에 따른 상속 지분에 따라 이를 공유하게 됩니다. 그러면 소유자 수가 상속인 수만큼 늘어난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만큼 모두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정비사업에서 원칙적으로 토지 등 소유자는 조합원이 될 수 있으나,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권이 여러 명의 공유에 속할 경우 그 여러 명을 대표하는 1명을 조합원으로 봅니다(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 제1호). 즉, A, B, C가 사업부지 내의 1개의 토지 또는 건축물을 공유하면 1명이 대표조합원이 되고, 1개의 분양권만이 주어집니다(도시정비법 제76조 제1항 제6호). 그 경우 A, B, C가 그대로 공유관계로 분양을 받거나 내부적으로 누가 분양받을지 정하면 됩니다.
반면, 한 명이 여러 개의 토지 또는 건축물을 소유하는 경우는 달리 볼 여지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주택자인 A가 정비사업 내에 3개의 토지 또는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다고 치자. A가 그대로 이를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A는 1개의 분양권만을 받게 됩니다. 정비사업 부지 내 다수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분양권 2개를 온전히 못 받게 되는 셈이어서, A의 입장에서는 '손해를 본다'라며 매우 억울해할 겁니다.
만약 A가 B와 C에게 각각 소유권을 양도했다면 어떨까요. 만약 조합설립인가 전에 A가 모두 양도했다면, 위의 예처럼 A, B, C 모두 각각 조합원이 되고 각각 1개씩 분양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법에서는 조합설립인가 후 1명으로부터 소유권을 양수하여 여러 명이 소유하게 된 때에는 여러 명을 대표하는 1명을 조합원으로 의제하고 있습니다(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 제3호). 그렇다면 A, B, C가 A를 대표조합원으로 지정했다면 나머지 B와 C는 현금청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판례는 이 경우 법이 B와 C를 완전히 탈퇴시켜 비조합원으로 취급하겠다는 취지로 해석할 수는 없고, 조합원을 수인을 대표하는 1인으로 보는 경우에도 대표조합원 외 나머지 토지 등 소유자들의 조합원 지위 자체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B와 C에게도 각각 분양권이 인정될까요.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하급심 법원마다 판단이 달라 혼선이 있었지만, 대법원은 최근 '주택재개발사업 조합설립인가 후 1인의 토지 등 소유자로부터 정비구역 안에 소재한 토지 또는 건축물의 소유권을 양수하여 수인이 소유하게 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그 전원이 1인의 조합원으로서 1인의 분양대상자 지위를 가진다'고 판시하여 논란을 정리했습니다(대법원 2023. 2. 23. 선고 2020두36724 판결). 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은 수인의 토지 등 소유자에게 1인의 조합원 지위만 부여함과 동시에 분양대상 자격도 제한함으로써 투기세력 유입에 의한 정비사업의 사업성 저하를 방지하고 기존 조합원의 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이기에, '수인이 1개 토지 또는 건축물을 공유하는 경우’(제1호)와 ‘1명이 여러 명에게 공유하는 경우’(제3호)를 달리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결국 B와 C에게는 단독 분양권이 없고, A, B, C는 공동으로 분양을 신청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비사업 내 다주택자인 A로서는 조합설립인가 전에 보유한 물권을 1개만 남기고 정리하는 편이 좋습니다. 혹시나 조합설립인가 전까지 정리를 못했다면 그 후에는 처분하면 안됩니다. 조합설립인가 후에 이전할 경우 수개의 분양권이 아니라, 양수인을 포함한 1/n의 분양권을 받는 거고 A 입장에서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은 여러 명의 토지 등 소유자가 1세대에 속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부모와 미혼인 19세 미만의 자녀는 1세대로 보기 때문에, A(부), B(모), C(미성년 자)가 정비구역 내에 각각 소유권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1인의 대표조합원을 구성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공동으로 분양을 신청해야 합니다. 이를 피하려면 조합설립인가 전에 소유권을 처분하거나 이혼 또는 분가를 해야만 합니다(도시정비법 제39조 제1항 제2호). 예를 들어 조합설립인가 후에 부부인 A와 B가 이혼을 하고, A와 미성년 자녀인 C가 1세대를 구성하게 된다면 B는 단독 조합원이 되고 1개의 분양권을 부여받게 되며, A와 C는 종전과 마찬가지로 대표조합원을 구성해야 하고 공동으로 1개의 분양권을 부여받게 됩니다.
분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19세 이상 자녀의 분가’는 세대별 주민등록을 달리하고 실제로 독립 생활을 시작해야만 비로소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녀일 경우 분가로 인정되는 경우는 분명합니다. 그런데 형제자매일 경우는 어떨까요. 실제 사례에서도 A와 B는 형제 관계로서 정비구역 내에 소유권을 증여받아 보유하고 전입신고를 마치고 1세대를 유지하다 각각 분가하였는데, 조합에서 이들에게 공동으로 1개의 분양권만을 부여하자 A, B는 반발하여 각각 분양권을 부여해 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19세 이상 자녀의 분가’는 특정 토지 등 소유자를 기준으로 그의 성년 자녀인 다른 토지 등 소유자가 분가하는 경우를 의미하지, 형제가 서로 분가한 경우까지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고 판단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 2. 22. 선고 2023누53012 판결, 상고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
결국, 조합설립인가 후 형제가 각기 분가해서 생활을 달리하더라도 형제는 공동으로 분양을 신청해야 합니다. 따라서 동일한 세대에 속하는 형제, 자매가 동일한 정비구역 내에 다수의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면 가급적 조합설립인가 전에 다 물권을 정리하는 편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