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재개발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건설사가 만든 휘황찬란한 조감도가 뿌려지고, 설립된 조합은 몇 년 안에 일정대로 착착 진행될 것이라 호언장담합니다. 하지만 정비사업은 추진위가 설립된 때로부터 빨라야 10년, 늦으면 20년도 넘게 걸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강산이 한두 번 변하는 동안, 조합원들의 혼인, 사망, 이사, 해외 거주 등 신변 사유로 조합원 지위가 이전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조합원 지위를 계속 보유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누군가는 더딘 사업 진행이나 조합원 간 갈등에 실망해서 부동산과 함께 조합원 지위도 팔고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이를 기회로 삼아 뒤늦게 정비사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의 정비사업은 조합원 지위의 이전이 자유롭지 않습니다. 재건축사업의 경우, 조합설립인가 이후 당해 재건축사업의 건축물 또는 토지를 양수한 자는 조합원이 될 수 없습니다(도시정비법 제39조 제2항).
재개발사업도 관리처분계획 인가 이후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재개발도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투기과열지구에 한하여 조합원 지위 이전이 제한됩니다. 해당 지역에서 자유로운 조합원 지위의 양도를 인정할 경우, 투기수요가 걷잡을 수 없이 개입될 수 있기에 이를 차단하는 겁니다.
2017년 이후 부동산 광풍이 불자, 문재인 정부는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 지역, 세종시 등을 대거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습니다가 대부분 해제하고, 현재 서울의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용산구만이 여전히 투기과열지구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정부는 논란 속에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도 재지정했고요.
물론 예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근무상 또는 생업상의 사정이나 질병 치료, 취학, 결혼으로 다른 지역이나 해외로 이주하는 경우가 그러합니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다른 곳으로 이전해야 하는데도 조합원 승계가 안 되면 집을 처분할 수 없어서 예외적으로 조합원 지위를 이전받을 수 있도록 한 겁니다. 1세대 1주택자로서 10년 이상 집을 소유하고 5년 이상 거주한 자가 집을 파는 경우도 조합원 지위가 승계됩니다. 그 정도 장기간 보유하고 거주했다면 투기수요로 보지 않겠다는 취지입니다.
재건축 조합 설립 후 3년 안에 사업시행계획 인가 신청이 없고, 3년 이상 집을 보유한 경우도 사업시행계획 인가 전에는 조합원 지위를 양도할 수 있습니다. 재건축 조합의 사업이 더뎌지는 경우도 계속 매도를 막는 것은 재산권을 심하게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건축사업에서 사업시행계획 인가일부터 3년 이내에 착공하지 못하거나, 착공일부터 3년 이상 준공되지 않은 재개발사업·재건축사업의 토지를 3년 이상 계속 소유한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는 1세대 2주택자라도 가능합니다. 실제로 국내 재건축 단지 가운데 사업 금액 면에서 최대어로 꼽히는 서울 압구정3구역 (압구정 아파트지구 특별계획구역3재건축정비사업)의 경우, 2021년 4월 19일에 조합설립인가를 받았는데 3년 안에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신청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2024. 4. 19. 후에 잔금을 지급할 것을 조건으로 나온 매물이 무려 100억 원을 훌쩍 넘는 금액으로 거래된 사례도 있습니다. 오히려 사업시행계획 인가를 하지 않는 것이, 조합원 지위를 이전하지 못해 팔지 못하던 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겁니다.
실제로 A는 서울 구로구의 재건축사업 중인 아파트를 2018년 3월에 매수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당시 구로구는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어 있었고, A는 조합원 지위를 승계받을 수 없었습니다. 다급해진 A는 조합을 상대로 조합원 지위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A는 소송 진행 중인 2023년 1월 5일에 투기과열지구가 해제되었으므로 조합원 지위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법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사후적으로 투기과열지구 지정이 해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조합원 지위를 취득하지 못한 양수인이 조합원 지위를 취득할 수 있다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이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4년 7월 26일 선고 2023구합80593 판결, 항소하지 않아 확정되었습니다.).
서울 양천구의 재건축 아파트를 보유한 조합원 B는 해당 아파트를 남편 C에게 일부 지분을 절세 목적으로 증여했습니다. 그러자 조합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지역에서 재건축사업을 시행하는 경우, 조합원이 조합설립인가 후 건축물 등을 양도하면 즉시 조합원의 지위를 상실합니다며 B와 C 모두가 조합원이 아니고 현금청산 대상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러자 B와 C는 증여가 착오였다는 이유로 증여계약을 취소하였고, 원상회복을 위해 공유지분 이전등기 말소 소송까지 제기하였으므로 B가 상실한 조합원 지위는 소급하여 회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조합원 자격을 상실한 양도인이 사후적으로 증여를 취소해 다시 조합원 지위를 회복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4년 9월 5일 선고 2023누62825 판결, 상고 취하로 확정되었습니다).
따라서 재건축 호재가 있다고 해서 함부로 투기과열지구에 투자했다가는 시세차익이 아니라 개발이익이 제외된 현금만 받고 청산될 수 있습니다. 현금은 감정평가를 기준으로 하지만 개발이익은 제외됩니다. 결국, 개발이익이 반영된 시가에 비해 현저히 낮은 금액만 받고 청산되니 투자자로서는 최악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일단 계약을 성사해 수수료를 챙기려는 공인중개사들도 그러한 정보를 잘 알리지 않습니다. 법령에 대한 해석도 투자자가 감당해야 할 리스크이기는 하나, 부동산 광풍이 불면 투자자들은 이런 사실을 자주 망각합니다.
이처럼 투자자라면 투기과열지구에서 조합원 지위를 이전받을 수 있는지 꼼꼼히 알아봐야 합니다. 뒤탈이 없으려면, 무턱대고 십수억원의 아파트 계약을 하지 말고, 해야 한다면 조합원 지위를 이전받지 못할 경우 계약의 효력을 상실한다는 해제조건 특약을 포함해야 그나마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