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던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이 한국도로공사를 상대로 자신들이 사실상 한국도로공사의 직접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근로자 지위를 확인하고 고용의 의사표시를 이행하며 미지급 임금 또는 손해배상을 지급할 것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퇴직한 일부 원고의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를 각하하고 나머지 원고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근로하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모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1996년부터 자회사 및 외주사업체를 통해 고속도로 정보통신시설의 유지보수 업무를 위탁해 왔습니다. 이 사건 원고들은 이러한 외주사업체에 고용되어 해당 업무를 수행해 온 직원들로, 자신들이 실질적으로는 한국도로공사의 직접적인 지휘·명령을 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파견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국도로공사가 자신들을 직접 고용할 의무가 있고 그동안 미지급된 임금 또는 그에 상당하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와 외주업체들은 원고들이 독립적인 용역 계약에 따라 외주업체 소속으로 업무를 수행한 것이므로 근로자파견 관계가 아니라고 맞섰습니다.
한국도로공사의 정보통신시설 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하는 외주업체 소속 직원들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하여 한국도로공사의 직접 근로자로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 및 그에 따른 임금·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첫째, 선정자 M의 근로자 지위 확인 청구는 정년 만 60세가 도과하여 확인의 이익이 없으므로 각하했습니다. 둘째, 선정자 M의 나머지 청구와 원고 및 나머지 선정자들의 청구는 모두 기각했습니다. 소송에 관련된 모든 비용은 원고들과 선정자들이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한국도로공사에 고용된 후 파견되어 한국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일하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피고가 원고들에게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다고 보기 어렵고 원고들이 피고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외주업체가 근로자에 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용역 업무의 범위가 한정적이고 전문성을 요구하며 외주업체가 독립적인 기업 조직과 설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보아 원고들의 모든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과 관련된 중요한 판례입니다. 파견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근로자파견'은 파견사업주(이 사건 외주사업체)가 근로자를 고용한 후 고용 관계를 유지하면서 사용사업주(이 사건 한국도로공사)의 지휘·명령을 받아 사용사업주를 위한 근로에 종사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근로관계의 실질을 기준으로 다음 다섯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 1. 지휘·명령의 상당성: 사용사업주가 근로자의 업무수행 자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구속력 있는 지시를 하는 등 상당한 지휘·명령을 했는지 여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제시한 과업지시서나 업무일지 확인 등이 일반적인 용역 관리 수준이며 외주업체가 자체 매뉴얼을 활용하여 구체적인 업무 지시를 했다고 보았습니다. 2. 사업 편입 여부: 근로자가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와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구성되어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 등 사용사업주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들과 피고 소속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 및 업무 내용이 명확히 구별되고 표창장 수여 등은 협업의 증표에 불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3. 원고용주의 독자적 권한 행사 여부: 원래 고용한 회사(외주업체)가 근로자 선발, 수, 교육, 훈련, 작업·휴게시간, 휴가, 근무태도 점검 등에 관한 결정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 여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외주업체가 독자적으로 근로자들을 채용하고 인사 및 근로조건을 관리하며 직무 교육을 실시했다고 보았습니다. 4. 업무의 전문성 및 구별 가능성: 계약의 목적이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업무의 이행으로 확정되고 해당 근로자가 맡은 업무가 사용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업무와 구별되며 그러한 업무에 전문성·기술성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정보통신시설 유지보수 업무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며 피고의 사업관리 업무와 명확히 구별된다고 판단했습니다. 5. 원고용주의 독립적 기업조직 및 설비: 원래 고용한 회사(외주업체)가 계약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인 기업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는지 여부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외주업체들이 유지보수 장비, 연구소, 특허, 별도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피고와의 용역 계약 외에 상당한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확인의 소'의 경우 '확인의 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당사자의 권리나 법률상 지위에 현존하는 불안·위험이 있고 이를 제거하는 데 확인 판결이 가장 유효하고 적절한 수단일 때 인정됩니다(대법원 2023. 4. 27. 선고 2021다229588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는 원고 M이 이미 피고의 정년인 만 60세에 도달하여 퇴직했기 때문에, 더 이상 피고의 근로자 지위에 있다는 확인을 구하는 것이 현존하는 불안·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유효적절한 수단이 아니라고 보아 해당 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유사한 상황에 처했을 때,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보다는 근로관계의 실질을 면밀히 따져봐야 합니다. 특히 다음의 사항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실제 업무 수행 시 사용사업주(이 사건의 한국도로공사)로부터 얼마나 구체적이고 구속력 있는 지휘·명령을 받았는지 여부입니다. 단순한 업무 내용 전달이나 결과 확인을 넘어 작업 방법, 시간, 순서 등에 대한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둘째, 사용사업주 소속 직원들과 하나의 작업집단으로 섞여서 공동 작업을 했는지, 사용사업주의 사업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는지도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셋째, 원래 고용된 회사가 근로자의 선발, 교육, 근무태도 점검, 휴가 등 인사 관련 권한을 얼마나 독자적으로 행사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넷째, 위탁된 업무가 구체적으로 범위가 한정된 전문적 업무였는지, 그리고 원래 고용된 회사가 해당 업무 수행을 위한 독립적인 기업 조직이나 설비를 갖추고 있었는지도 고려 대상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근로자 파견 여부가 결정되므로, 각 요소에 대한 증거와 상황을 상세히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