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강남 H병원 건물 내에 개설된 G약국이 의료기관 시설 내 약국 개설을 금지하는 약사법을 위반하였는지 여부가 쟁점이 된 사건입니다. 법원은 H병원과 G약국이 공간적, 기능적으로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으며 담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여, 인근 약국 개설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G약국 개설등록 처분을 취소하였습니다.
피고보조참가인 E 약사는 2022년 5월 2일 서울 강남구 F 건물 L호에 G약국 개설등록을 신청했고, 강남구보건소장은 다음 날인 5월 3일 이를 수리했습니다. 이 건물에는 H병원이 지하 2층부터 6층까지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었고, G약국은 H병원 원무과와 인접한 로비층에 위치했습니다. 이 건물을 본점으로 하는 주식회사 U는 H병원 원장의 가족이 대표이사 및 사내이사로 등재되어 있었고, G약국은 U로부터 L호를 전대 받아 운영하는 형태였습니다.
H병원으로부터 도보로 약 1분 거리에 위치한 J약국과 N약국을 운영하는 원고 B, C 약사들은 G약국 개설 후 H병원 처방 조제 건수가 급감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에 사단법인 A, B, C, D은 G약국 개설등록 처분이 약사법 제20조 제5항(의료기관 시설 내 약국 개설 금지)에 위배된다며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소송을 제기한 단체, 인근 약사, 환자에게 약국 개설등록 취소 소송을 제기할 자격(원고적격)이 있는가. 둘째, G약국이 개설된 장소가 약사법에서 금지하는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하는가. 셋째, 위 법률 위반으로 인해 G약국 개설등록 처분을 취소해야 하는가입니다.
법원은 사단법인 A와 환자 D의 소송은 원고적격이 없어 각하했습니다. 그러나 인근 약사 B와 C에게는 원고적격을 인정했으며, 피고 강남구보건소장이 G약국 개설 약사 E에게 내린 약국 개설등록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소송 비용은 원고적격이 없다고 판단된 사단법인 A와 D이 피고 및 피고보조참가인과의 관계에서 부담하고, 원고 B, C과 피고 간의 부분은 피고가, 원고 B, C과 피고보조참가인 간의 부분은 피고보조참가인이 각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먼저 소송을 제기할 자격(원고적격)에 대해 판단했습니다. 사단법인 A는 약사 개인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대변하는 단체로서 직접적인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환자 D 역시 H병원에서 한 차례 진료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건강권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인근 약국을 운영하는 B와 C의 경우, 약사법이 약사 개인에게 보장하는 '의료기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제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가 침해될 수 있다고 보아 원고적격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G약국 개설 이후 이들의 약국에서 H병원 처방 조제 건수가 기존의 1/5 내지 1/10 수준으로 줄어든 점이 고려되었습니다.
이어서 G약국의 개설등록 처분이 적법한지 여부를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G약국이 개설된 장소가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한다고 보아 약사법 제20조 제5항 제2호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H병원이 건물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어 일반인들이 G약국을 H병원의 부속시설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G약국은 출입문이 다르지만, 과거에는 H병원과 연결되어 있었고, 현재도 H병원 직원들이 환자들에게 G약국을 안내하는 등 공간적, 기능적으로 독립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G약국 이용을 위해 H병원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셋째, G약국은 '병원처방 조제전문'이라고 광고하며, H병원의 처방전을 독점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넷째, 건물 임차인이 H병원 원장의 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어 H병원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며, G약국과의 전대차 계약이 매출에 따른 월 차임 인상 조건을 포함하고 있어 담합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G약국이 H병원의 처방전을 검증·견제할 의무를 소홀히 할 우려를 낳습니다. 마지막으로, 과거 동일한 자리에 약국 개설등록이 반려된 전례가 있음에도, 변경된 사정만으로 G약국이 독립되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법원은 G약국 개설등록 처분이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약사법'의 여러 조항과 '행정소송의 원고적격'에 관한 법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약사법의 의약분업 원칙과 약국 개설 제한 약사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국민보건 향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약분업 제도는 의료기관과 약국 상호 간의 견제와 검증을 통해 의료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국민 건강을 보호하려는 취지입니다(약사법 제23조 제3항).
이러한 취지를 위해 약사법은 약국 개설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습니다. 약사법 제20조 제5항은 특정 장소에는 약국을 개설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특히 이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은 제2호('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 제3호('의료기관의 시설 또는 부지의 일부를 분할·변경 또는 개수한 경우'), 그리고 제4호('의료기관과 전용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규정들은 약국이 의료기관에 종속되거나 담합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약사가 독립적으로 의약품 조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약사법 제24조 제2항은 의료기관 개설자가 처방전을 가진 자에게 특정 약국에서 조제 받도록 지시하거나 유도하는 행위를 담합 행위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약국과 의료기관 간의 불공정한 유착을 방지하려는 목적입니다.
2.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 판단 기준 대법원은 어떤 약국 개설 장소가 약사법 제20조 제5항에서 금지하는 '의료기관의 시설 안 또는 구내'에 해당하는지 판단할 때, 단순히 문언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의약분업 제도의 입법 취지, 즉 약국을 의료기관으로부터 공간적, 기능적으로 독립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출입문을 달리하거나 외형적으로 분리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 이용자의 인식, 건물 구조의 유기성, 의료기관과의 실질적인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담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경우라면 위반으로 판단될 수 있습니다.
3. 행정소송의 원고적격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도 해당 처분으로 인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당했다면 취소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자격, 즉 원고적격이 인정됩니다. 여기서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은 해당 처분의 근거 법규 및 관련 법규의 합리적 해석상 순수한 공익 보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을 보호하는 취지가 포함되어 있다고 해석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의약분업 제도가 약사 개인의 '의료기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제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보호하는 취지를 포함한다고 보아 인근 약사들의 원고적격을 인정했습니다.
의료기관 근처에 약국을 개설할 경우, 단순히 출입문을 분리하거나 외형적으로 독립된 것처럼 보여도 실제 운영 방식과 건물 구조, 임대 관계 등을 통해 의료기관과의 공간적·기능적 독립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으면 약사법 위반으로 개설등록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약국을 개설하려는 건물에 의료기관이 대규모로 입점해 있거나, 건물 소유주·임차인과 의료기관 개설자 간의 특수 관계(예: 가족 관계)가 있다면, 담합의 가능성이 높아 보여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월세 계약 시 약국의 매출액에 따라 임대료를 조정하는 조항이 있다면, 이는 약국이 의료기관에 종속되거나 담합할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 판단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의료기관 직원이 환자들에게 특정 약국을 안내하는 행위는 약사법상 담합 행위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은 새로 개설되는 약국으로 인해 '의료기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조제 업무에 종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가 침해될 경우, 해당 약국의 개설등록 처분 취소를 구할 원고적격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경우, 특정 약국의 개설로 인해 자신의 건강권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약국 개설등록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는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