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필리핀에서 귀국한 부부가 질병관리청의 시설 격리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 부부는 자신들이 제출한 PCR 음성확인서가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안내된 기준에 부합함에도 불구하고,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이 지정한 검사기관에서 발급받은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시설 격리 처분을 받은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질병관리청이 처분 과정에서 행정절차법상의 의무를 위반하고,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점을 인정하여 시설 격리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원고 부부는 2021년 3월 30일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가 2021년 4월 28일 인천공항으로 귀국했습니다. 귀국 당시 질병관리청은 원고들이 제출한 코로나19 PCR 음성확인서가 주 필리핀 대한민국 대사관이 지정한 검사기관이 아닌 곳에서 발급되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시설 격리 대상으로 고지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는 입국일로부터 14일간 세종시 자택에 격리하라는 통지서를 교부했고 이후 문자 메시지 등을 통해 시설 격리 대상임을 통보했습니다. 원고들은 시설 격리에 즉시 응하지 않다가 2021년 5월 1일 경기도 용인의 임시생활시설에 격리되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격리 해제가 임박한 2021년 5월 10일에야 국립인천공항검역소장이 시설 격리를 명하는 격리통지서를 재통보했다는 점입니다. 원고들은 기획재정부 공무원과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이 사건 처분으로 인해 징계 대상이 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질병관리청의 시설 격리 처분이 행정절차법에서 정한 처분의 이유 제시 의무, 처분 방식 준수 의무, 처분 정정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질병관리청이 특정 국가에서 입국하는 내국인에 대해 PCR 음성확인서 발급기관을 제한한 것이 법률유보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게시된 안내를 신뢰하여 PCR 음성확인서를 발급받은 원고들에게 시설 격리 처분을 한 것이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되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격리 기간이 종료된 후에도 이 사건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피고 질병관리청장이 2021년 4월 28일 원고들에게 내린 시설 격리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피고 질병관리청이 원고들에게 시설 격리 처분을 내리는 과정에서 여러 행정절차법상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처분의 이유를 명확히 제시한 문서를 즉시 교부하지 않은 점, 처분의 형식적 요건을 지키지 않은 점, 그리고 처분 내용의 오류(자택 격리에서 시설 격리로 변경)를 지체 없이 정정하여 통지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질병관리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안내한 PCR 음성확인서 제출 기준과 달리 재외공관 지정 검사기관 발급이라는 별도 기준을 적용하면서 명확한 안내 없이 시설 격리 처분을 내린 것은 국민의 신뢰를 침해하는 행위로 보아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법률유보원칙 위반이나 불복방법 고지의무 위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 판결에는 다음과 같은 법률과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행정절차법 제23조 (처분의 이유 제시) 및 제24조 (처분의 방식): 행정청은 국민에게 불이익한 처분을 할 때 그 근거와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고, 원칙적으로 문서로 처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 질병관리청은 원고들에게 시설 격리 처분을 하면서 즉시 처분의 이유를 명시한 문서를 교부하지 않고, 격리 해제 직전이 되어서야 시설 격리 통지서를 재교부하여 이 의무를 위반했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행정절차법 제25조 (처분의 정정): 행정청은 처분에 오기나 그 밖에 명백한 잘못이 있을 때에는 지체 없이 정정하고 그 사실을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합니다. 원고들에게 최초 '자택 격리' 통지서가 발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고가 이를 '시설 격리'로 변경하면서 격리 해제 임박 시점에야 정정 통지를 한 것은 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행정소송법 제12조 (원고적격): 행정처분의 효과가 이미 소멸된 경우라도 그 처분의 취소로 인해 회복될 법률상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이 공무원, 연구원으로서 위법한 시설 격리 처분으로 인해 징계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는 점을 고려하여 소송의 법률상 이익을 인정했습니다.
신뢰보호의 원칙: 행정기관이 국민에게 제시한 공적인 견해표명을 국민이 신뢰하고 이에 따라 어떤 행위를 했을 때, 행정기관은 그 신뢰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질병관리청은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적인 PCR 음성확인서 제출 기준을 안내했으나, 필리핀 입국자에 대해서는 '재외공관이 지정한 검사기관 발급'이라는 추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충분히 안내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이 질병관리청의 안내를 신뢰하여 PCR 음성확인서를 발급받았으므로, 안내되지 않은 기준으로 시설 격리 처분을 내린 것은 신뢰보호원칙에 위반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법률유보원칙 (감염병예방법 및 검역법): 행정 작용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원고들은 PCR 음성확인서 발급기관을 제한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과 검역법에 따라 질병관리청장이 감염병 예방 및 관리를 위해 특정 지역 입국자에게 PCR 음성확인서 제출을 요구하고 발급기관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보아 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해외 입국 관련 방역 지침은 시시각각 변동될 수 있으므로, 출국 전 반드시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에 주재하는 대한민국 재외공관 홈페이지의 최신 공지를 모두 확인하여야 합니다. 특히 PCR 음성확인서의 유효 기간, 발급 기관의 지정 여부, 서식 등 세부 조건을 꼼꼼히 확인하고 관련 서류를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행정기관으로부터 중요한 행정처분을 받을 때에는 처분의 근거와 이유가 명확히 기재된 문서 형식의 통지서를 즉시 요구하고 수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두 통지나 문자 메시지만으로는 나중에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입증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만약 행정처분에 오류가 있거나 내용이 변경되었다면, 행정기관에 지체 없이 정정을 요구하고 정확한 문서를 받아야 합니다. 설령 격리 기간이 종료되었더라도, 해당 행정처분으로 인해 징계 가능성 등과 같이 명예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법률상 불이익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