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이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된 인물의 후손들이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토지에 대해 국가가 친일재산으로 분류하고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한 결정의 취소를 요청하며 제기한 소송입니다. 후손들은 해당 토지가 조상 대대로 물려온 선산이며,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에서 소유권을 확인받은 절차인 '사정(査定)'이 새로운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일제강점기의 '사정' 역시 소유권을 창설적으로 취득하는 행위로 보아 특별법상 '취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으며, 해당 토지가 선산이라는 후손들의 주장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국가의 친일재산 귀속 결정이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망 소외 1은 1910년 경상북도장관, 1916년 전라북도장관을 역임하는 등 일제 식민통치에 앞장선 인물로, 훗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과 1917년경 경기도 고양군 벽제면 일대 임야와 전을 자신 명의로 '사정'받았습니다. 이후 소외 1의 아들과 손자, 손녀들이 이 토지를 상속받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2008년 2월 28일,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이 토지를 특별법상 친일재산으로 보고 국가에 귀속시킨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원고들(소외 1의 후손들)은 이 결정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들은 '사정'이 '취득'이 아니며, 이 토지는 1764년 이전부터 선조들이 사용하던 선산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서 규정한 '취득'의 범위에 일제강점기의 토지조사사업을 통한 '사정'이 포함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원고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해당 토지가 소외 1의 선조들이 1764년 이전부터 소유해 온 선산으로서 친일행위와 무관하게 대대로 상속된 재산임을 입증하여 친일재산 추정을 뒤집을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의 국가귀속 결정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들이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이 판결로 인해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소외 1이 일제강점기에 사정받은 것으로 확인된 고양시 덕양구 일대의 토지(총 23,307㎡, 1,472㎡, 725㎡)는 2005년 12월 29일 자로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 확정되었습니다. 법원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에서의 '사정'을 새로운 소유권 '취득'으로 인정했으며, 후손들이 해당 토지가 친일행위와 무관한 선대 상속 재산임을 명확히 증명하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 (이하 '특별법')에 의해 판단되었습니다.
특별법 제2조 제1호 가목 및 제2호: 이 조항들은 '친일반민족행위자'와 '친일재산'의 정의를 명시합니다. 망 소외 1은 특별법상 '재산이 국가에 귀속되는 대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인정되었으며, 이 사건 각 토지는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 사이에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취득한 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습니다.
특별법 제2조 제2항: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취득한 재산은 친일재산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이 기간에 재산을 취득했다면 친일재산으로 일단 간주되고, 이를 다투는 측에서 친일행위와 무관하게 취득했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특별법 제3조 제1항: '친일재산은 국가에 귀속된다'고 명시하며, '그 취득원인행위시에 소급하여 국유로 한다'고 정하여 친일재산이 국가 소유가 되는 시점을 명확히 합니다.
적용된 법리:
토지조사사업상 '사정'의 의미: 법원은 일제강점기 토지 및 임야조사사업에서의 '사정'을 단순한 소유권 확인 절차가 아니라, 근대적 등기제도를 통해 근대적 의미의 소유권을 '창설'하는 행위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사정'을 통해 토지 소유권을 부여받은 것은 특별법상 '취득'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당시 혼란한 상황에서 무주지나 소유 불명 토지에 대한 소유권이 부여되기도 했던 점을 고려한 해석입니다.
친일재산 추정의 복멸 증명: 특별법에 따라 친일재산으로 추정되는 경우, 그 추정을 깨고 재산이 친일행위와 무관하게 취득되었음을 증명할 책임은 재산을 주장하는 측(원고들)에 있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이 이 사건 토지들이 소외 1의 선조들이 1764년 이전부터 소유해 온 선산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위토관리대장 등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단순히 선대의 분묘가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충분한 증명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소외 1이 당시 식민통치 기관의 최고 수장으로 재직하며 토지조사사업에 협력하고 특권적 혜택을 받은 점 등도 고려되었습니다.
친일재산과 같이 특별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재산 관련 분쟁에서는 일반적인 재산권 주장 외에 특별법의 규정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특히 '취득'과 같은 법률 용어가 일반적인 의미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과거 토지조사사업에서의 '사정'이 소유권 '취득'으로 인정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또한 재산이 친일재산으로 추정되는 경우, 그 추정을 뒤집기 위해서는 해당 재산이 친일행위와 무관하게 취득되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명확하고 객관적인 증거, 예를 들어 오래된 문서나 기록 등이 필수적입니다. 단순히 선조의 분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선대 상속 재산임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