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
이 사건은 A 주식회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부과받은 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 중 일부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무효임을 주장하며 제기한 소송입니다. 원고는 과거 소속 근로자들에게 추가 보수를 지급하면서 발생한 보험료에 대해 피고 공단이 부과한 32억여 원 중 10억여 원이 소멸시효가 지나 무효라고 주장했습니다. 1심 법원은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고, 피고 공단은 이에 불복하여 항소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피고 공단의 항소를 기각하며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단은 원고의 보험료 재정산 요청이 소멸시효 중단 사유인 채무 승인에 해당하거나,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이거나,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A 주식회사는 소속 근로자들과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 및 휴일근로에 따른 연장근로 중복할증 문제로 분쟁을 겪었고, 결국 합의를 통해 근로자들에게 추가 보수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이 합의에 따라 A 주식회사는 2020년 2월 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2009년부터 2017년까지의 귀속분 보험료 재정산을 요청했다가, 며칠 뒤인 2월 14일 이를 철회했습니다. 이후 같은 해 5월 21일에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의 귀속분 보험료 재정산을 다시 요청했고, 이에 공단은 2020년 6월 16일 A 주식회사에 총 32억 1천5백만여 원의 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를 부과했습니다. A 주식회사는 2020년 7월 10일 이 보험료를 전액 납부했으나, 3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인 2023년에 공단이 부과한 보험료 중 2014년부터 2016년 귀속분 10억 6천만여 원 부분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며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부과한 건강보험료 중 일부가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는지 여부, 원고의 보험료 재정산 요청 및 납부 행위가 소멸시효 중단 또는 소멸시효 이익 포기로 볼 수 있는지 여부, 원고의 소멸시효 주장 행위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지 여부
피고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항소를 기각하고, 항소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법원은 피고 공단이 원고에게 부과한 건강보험료 및 장기요양보험료 중 10억 6천여만 원 부분은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무효라고 판단한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며, 공단의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원고의 보험료 재정산 요청이나 납부 행위는 소멸시효 중단이나 포기로 보기 어렵고, 원고가 뒤늦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최종 판단입니다.
이 판결은 주로 국민건강보험료 징수권의 소멸시효와 그 중단 및 포기, 그리고 신의성실의 원칙 적용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1. 보험료 징수권의 소멸시효: 국민건강보험법 제91조 제1항에 따라 보험료 징수권은 3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시효가 완성됩니다. 이 시효는 보험료 징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진행됩니다. 판례는 건강보험료의 부과 및 징수 체계가 고용보험 및 산업재해보상보험의 보험료 징수 체계와 동일하게 전년도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월별보험료를 부과한 후 다음 해 확정된 해당 연도의 보수총액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방식이므로, 다른 사회보험료와 마찬가지로 객관적인 시점에서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즉, 공단이 징수 사유를 알지 못했더라도 소멸시효 기산일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2. 소멸시효 중단으로서의 채무 승인: 민법 제168조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로 청구, 압류 또는 가압류·가처분, 승인을 규정하고 있으며, 국민건강보험법 제91조 제4항은 이 법에서 정한 사항 외에는 민법에 따른다고 명시합니다. 채무의 승인은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으로 권리를 잃게 될 자에게 그 권리가 존재함을 인식한다는 뜻을 표시함으로써 성립합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원고가 보험료 재정산을 요청한 행위는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제35조에 따른 보수월액 산정을 위한 보수 등 통보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볼 여지가 크므로, 이를 곧바로 채무 승인으로 단정하기 어렵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또한, 일시적으로 재정산을 요청했다가 철회한 사실도 채무 승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3.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소멸시효가 완성된 후 시효이익을 받을 채무자는 시효이익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효 완성으로 인한 법적 이익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보험료 재정산을 요청하고 납부한 행위만으로는 원고가 소멸시효 완성 사실을 알면서도 시효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의사로 포기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법원은 보았습니다. 소멸시효 기산점 등에 대한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신의성실의 원칙: 피고 공단은 원고가 허위의 보수총액을 통보하여 징수권 행사를 어렵게 했고, 소멸시효 완성 후에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 시효를 원용하지 않을 것처럼 신뢰하게 만들었으므로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과거 상여금의 통상임금 포함 여부 등 법적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시기에 보수총액을 과소 산정한 것은 의도적인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공단은 정당한 보험료를 징수할 권한과 책무가 있으며,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충분히 징수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에도 제때 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원고의 소멸시효 주장이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행정처분의 위법 여부는 처분 당시의 법령과 사실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원고의 보험료 납부 행위가 도의관념에 적합한 비채변제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처분 이후의 사정이므로 처분의 위법 여부를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회사가 근로자에게 추가 임금을 지급하여 건강보험료 등이 추가로 부과되는 경우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단순히 보험료 재정산을 요청하거나 일시적으로 납부한 행위가 항상 소멸시효 중단 사유인 채무 승인이나 소멸시효 이익 포기로 간주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보험료 징수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에 대한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더욱 그러합니다. 사회보험료의 징수권은 객관적인 시점에서 소멸시효가 진행되며, 보험료 부과 기관이 징수 사유를 알지 못했다고 하여 소멸시효 기산일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보험료 부과 기관은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징수권을 행사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회사가 보수총액을 과소 통보한 경우라도 당시 법적 판단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다면 이를 의도적인 허위 통보로 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