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 기타 형사사건
피고인 A는 인터넷 구직사이트를 통해 의류 쇼핑몰 사무 보조 업무를 제안받았으나, 채용 과정 및 업무 내용이 비정상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 역할을 수행하며 여러 피해자로부터 총 6,352만 원을 받아 조직에 전달한 혐의(사기 및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은 유죄를 선고했으나, 원심(2심)은 피고인에게 사기 및 범죄수익은닉에 대한 고의가 없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가 있거나 자유심증주의 한계를 벗어난 잘못이 있다고 보아,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했습니다.
피고인 A는 2022년 10월경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주식회사 H'이라는 의류 쇼핑몰의 사무 보조 업무를 제안받았습니다. 비대면 채용 절차를 거쳐 'J 팀장'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게 되었는데 그 내용은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K 팀장'이나 'L 과장'의 부탁이라며 피해자들로부터 현금을 수거한 뒤 ATM을 통해 약 100만 원씩 쪼개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의 계좌로 무통장 송금하는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은 약 3일 동안 4명의 피해자로부터 총 6,352만 원을 수거하고 송금하는 일을 반복했고 그 대가로 건당 약 15~25만 원의 수당을 받았습니다. 이후 경찰의 연락을 받고 자신이 보이스피싱에 연루되었음을 알게 되어 자진 출두했습니다.
피고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행위가 사기 범행의 일부임을 알았는지 즉 사기 및 범죄수익은닉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특히 직접적인 공모 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울 때 간접사실과 정황사실을 통해 고의를 인정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무죄)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환송했습니다. 이는 피고인에게 사기 및 범죄수익은닉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아 원심의 판단에 법리 오해가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대법원은 보이스피싱 범행의 특성 피고인의 채용 과정의 비정상성 현금 수거 및 송금 방식의 이례성 반복적인 거액의 현금 취급 일반적이지 않은 보수 지급 방식 피고인의 사회 경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피고인에게 적어도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이 범죄의 전모를 알지 못했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미필적으로라도 인식했다면 공동정범으로서의 책임을 질 수 있다는 법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형법상 사기죄의 공모공동정범: 2인 이상이 범죄를 함께 저지르려는 의사의 결합(공모)만 있으면 공모 관계가 성립하며 비록 전체 모의 과정이 없었더라도 순차적으로 또는 암묵적으로 상통하여 의사가 결합되면 공모로 인정됩니다. 사기의 구체적인 기망 방법을 몰랐더라도 공모 관계는 부정되지 않습니다. (대법원 1997. 9. 12. 선고 97도1706 판결, 대법원 2013. 8. 23. 선고 2013도5080 판결 등 참조) 고의의 판단 기준 (특히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경우): 피고인이 범죄에 이용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할 때 관련자 진술이 없더라도 피고인의 범의(범죄를 저지르려는 의사)나 공모 사실과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 또는 정황사실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인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대법원 2005. 5. 12. 선고 2005도1148 판결 등 참조) 보이스피싱 현금수거책의 고의 판단 시 고려사항:
비정상적인 채용 과정 주의: 대면 면접 없이 채용이 이루어지거나 회사의 실체가 불분명한 경우 또는 신원 확인 절차가 생략된 경우에는 범죄 연루 가능성을 의심해야 합니다. 업무 내용의 이례성 인지: 고액의 현금을 직접 수거하거나 타인 명의의 계좌로 분할 송금하는 등 사회 통념상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돈을 취급하는 업무는 보이스피싱 등 불법적인 행위에 가담하는 것일 수 있으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고액 현금 수수 시 경계: 일반적인 아르바이트 보수보다 지나치게 높은 수당을 지급하거나 현금 수수 과정에서 금액 확인 절차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의심해봐야 합니다. 사회 경험 고려: 보이스피싱 범죄 수법은 언론 등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으므로 자신의 사회 경험과 상식을 바탕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려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미필적 고의의 위험: 범죄의 전모를 몰랐더라도 자신의 행위가 불법적인 일에 사용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짐작하거나 의심하면서도 행동을 강행했다면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어 범죄 책임이 따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