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이 사건은 청구인의 할아버지가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일본으로 강제동원되어 같은 해 사망하였고, 이후 강제동원 피해자로 인정되어 구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유족으로 인정받아 위로금 지급을 신청한 사건입니다. 법률이 개정되면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청구인을 포함한 유족 8인에게 희생자 1명당 2천만 원의 위로금이 결정되었는데, 청구인은 이 위로금 액수가 너무 적어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청구했습니다.
청구인은 자신의 할아버지가 일제에 의해 강제동원되어 사망한 희생자이며, 국가에서 지급하는 위로금 2천만 원이 강제동원으로 인한 적극적, 소극적, 정신적 손해를 모두 보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유족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2천만 원이라는 고정된 위로금 액수가 피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보아 해당 법률 조항의 위헌을 다투었습니다.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유족에게 지급되는 위로금 액수를 희생자 1명당 2천만 원으로 정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4조 제1호가 유족의 재산권을 침해하는지 여부입니다.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헌법재판소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위로금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의 손해를 보상하거나 배상하는 성격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인도적인 차원의 시혜적인 금전 지급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위로금은 유족의 재산권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그 외 다른 기본권 침해 가능성도 없다고 보아 청구인의 심판청구를 각하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하 '대일항쟁기강제동원자지원법') 제4조 제1호입니다. 이 조항은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가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경우, 희생자 1명당 2천만 원의 위로금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률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1965년 체결된 한일 청구권 협정과 관련하여 국가가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 등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위로금 등을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고통을 치유하고 국민화합에 기여함'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법의 목적과 유족의 범위를 민법상의 재산상속인이 아닌 '일부 친족'으로 한정한 제3조의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위로금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와 그 유족이 받은 손해를 보상하거나 배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입은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인도적 차원'의 시혜적인 금전 급부'로 해석했습니다. 여기서 '시혜적 금전 급부'란 국가가 특별한 이유로 자비롭게 베푸는 성격의 금전 지급을 의미하며, 이는 법률상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재산권)로 보지 않는다는 법리를 적용한 것입니다.
이 판례는 특정 피해에 대한 국가의 '지원금' 또는 '위로금'이 법률적으로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만약 국가가 특정한 사유로 인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한다면, 이는 손해를 완전히 배상하거나 보상하는 목적이 아닐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금은 '인도적인 차원의 시혜적 급부', 즉 국가가 은혜를 베푸는 성격의 금전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 경우 지원금 액수에 대한 불만은 재산권 침해 주장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유사한 문제 상황에서 국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나 위로금이 어떤 법률적 성격을 가지는지 미리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단순한 지원인지 아니면 법적인 손해배상이나 보상의 성격인지에 따라 주장할 수 있는 권리 범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