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금전문제 · 노동
주식회사 A는 주식회사 L의 건축 설계 용역을 수행한 뒤 약 1억 1천만 원의 용역비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1심 법원은 주식회사 L에게 용역비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2심 법원은 주식회사 L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주식회사 A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주식회사 A가 주식회사 L의 감사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거래 관행에 어긋나는 여러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아, 주식회사 L에게 사용자로서의 배상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주식회사 A는 주식회사 L의 토지 매입 및 건물 건축과 관련된 설계 업무를 수행하고 용역비 1억 1,160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주식회사 L의 실제 대표자 부부는 E에게 토지 매입 및 회사 설립 관련 업무를 폭넓게 위임했고 E는 주식회사 L의 감사 신분으로 주식회사 A와 설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러나 주식회사 L은 E의 행위가 정식 사무집행이 아니므로 용역비를 지급할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주식회사 A는 E와 G가 이전에 부동산 관련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과의 기존 거래 관계를 신뢰하여 이번 계약에도 나섰습니다. 계약은 주식회사 L의 사무실이 아닌 E와 G가 운영하는 다른 회사의 사무실에서 체결되었으며 주식회사 A는 계약금을 받지 않은 채 전체 설계 업무의 60%까지 진행했습니다. 또한 주식회사 A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기 전까지 주식회사 L의 대표자 부부와 단 한 차례도 대면한 적이 없었습니다.
건축설계사인 주식회사 A가 주식회사 L의 감사를 통해 건축 설계 계약을 체결했는데 주식회사 L이 사용자로서 용역비에 대한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특히 주식회사 A가 계약 상대방인 감사의 행위가 주식회사 L의 정식 사무집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소홀히 한 중대한 과실이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이었습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인 주식회사 A의 청구를 기각하며 소송에 든 총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건축 설계 법인인 원고가 계약 상대방의 직위와 비정상적인 계약 체결 방식에 대해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사용자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의 용역비 청구를 최종적으로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민법 제756조의 사용자 배상책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민법 제756조 (사용자의 배상책임): 이 조항은 누군가 다른 사람(피용자)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 경우(사용자), 피용자가 업무와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사용자가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업무와 관련하여'라는 것은 피용자의 불법행위가 겉으로 보기에 사용자의 사업 활동이나 사무 집행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일 때를 말합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피해를 입은 사람이 피용자의 행위가 실제로는 사용자의 정식 업무 집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거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도(중대한 과실) 이를 알지 못했다면 사용자는 책임지지 않아도 됩니다.
이 판결에서 법원은 주식회사 A가 계약 체결 당시 E의 이전 범죄 전력을 알고 있었고 E의 직위(감사)가 통상적으로 계약 권한이 없는 점, 주식회사 L의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계약하고 계약금 없이 업무를 진행하며 주식회사 L의 대표자와 한 번도 대면하지 않은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황들은 주식회사 A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E의 행위가 주식회사 L의 정식 사무 집행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주식회사 A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주식회사 L에게는 사용자로서의 배상책임이 없다고 최종 결론 내렸습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는 상대방 법인의 대표자 또는 정식으로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권한을 철저히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법인의 임원 중 '감사'는 통상적으로 대외적인 계약 체결 권한이 없으므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계약금 지급, 계약서 양식, 계약 체결 장소 등 거래의 모든 과정이 일반적인 상식과 관행에 부합하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금 없이 큰 규모의 업무를 진행하거나 상대방 법인의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계약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거래 상대방이나 계약을 주도하는 사람의 과거 이력에 문제가 있다면 신중하게 접근하고 더욱 철저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계약 당사자가 법인인 경우, 해당 법인의 대표자와 직접 대면하여 사업의 목적과 진행 방식에 대해 충분히 협의하고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