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해배상 · 의료
피고 병원에서 치질 수술을 받은 원고가 경막외마취 후 하반신 마비 등 중증의 척수경색 증상을 보여 피고 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마취 과정에서 마취 약물 및 첨가제가 혈관 내에 주입되어 척수경색을 초래한 의료상 과실이 추정된다고 판단하고, 의료사고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법리를 적용했습니다. 다만, 합병증의 희소성, 과실 추정의 한계, 피고의 수술 후 대처 노력 등을 감안하여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했으며, 재산상 손해액과 위자료를 합산하여 총 8억 8천만 원 이상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원고는 2017년 6월 15일 오후 2시경 피고 병원에서 피고로부터 치질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전 피고는 원고의 엉치뼈 부위에 국소마취제와 혈관 수축제(에피네프린)를 첨가한 약물로 경막외마취를 시행했습니다. 수술이 종료된 후 같은 날 오후 5시경 원고는 하반신 감각 없음, 다리 저림, 소변 누출 등의 이상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3시경 피고는 원고의 마취 부위에서 피가 흡인되는 것을 확인하여 혈종에 의한 신경 압박을 의심했으며, 오전 7시경 원고를 충남대학교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충남대학교병원에서 MRI 검사 결과 원고는 '척수경색증'(흉추 7번 하방) 진단을 받았고, 이후 재활 치료를 받았으나 하반신 완전마비, 신경인성 방광 및 장, 신경인성 통증, 발기부전 등 심각한 후유 장애를 안게 되었습니다. 이에 원고는 피고의 의료 과실(마취 약물 오주입 등) 및 설명 의무 위반으로 인해 위와 같은 장애를 입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피고 의사가 경막외마취 과정에서 마취 약물 및 첨가제(에피네프린)를 혈관 내에 잘못 주입하여 척수경색을 발생시킨 의료 과실이 인정되는지 여부, 피고가 수술 및 마취의 부작용에 대한 설명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 의료 과실과 원고의 하반신 마비 등 중증 장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지 여부,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어느 정도로 제한할 것인지 여부, 그리고 원고가 입은 재산적·정신적 손해액의 산정.
원심 판결 중 원고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885,812,910원 및 이에 대하여 2017년 6월 15일부터 2021년 9월 29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해야 합니다. 원고의 나머지 항소는 기각되었으며, 소송 총비용 중 50%는 원고가, 나머지는 피고가 각각 부담합니다.
재판부는 피고의 마취 과정에서의 시술상 과실로 인해 원고의 척수경색 및 중증 장애가 발생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원고에게 척수경색을 유발할 만한 기왕력이나 다른 원인이 없었다는 점, 수술 직후 증상이 발현된 점, 그리고 진료기록 감정 결과 마취약물 및 첨가제가 혈관에 흡수되어 혈관 수축 또는 폐쇄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점 등을 주요 근거로 삼았습니다. 다만, 경막외마취 후 척수경색이 매우 드문 합병증이라는 점, 과실 및 인과관계가 명확히 입증된 것이 아니라 추정의 법리에 따라 인정된 점, 의료행위 자체의 내재적 위험성, 피고가 수술 후 원고의 상태 회복을 위해 노력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했습니다. 최종적으로 원고의 일실수입, 기왕 및 향후 치료비, 보조구비, 개호비 등 재산상 손해 921,970,190원에서 기지급된 치료비 86,157,280원을 공제하고 위자료 50,000,000원을 더하여 총 885,812,910원을 피고가 원고에게 배상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본 판결은 민법상 불법행위(제750조) 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과 관련한 의료 과실의 법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1. 의료 과실 및 인과관계의 입증 책임 완화: 의료 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며, 그 과정은 대부분 환자가 알 수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 측이 의사의 의료 행위상의 주의 의무 위반과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다39567 판결 등)에 따르면, 환자가 치료 도중 하반신 완전마비와 같은 중대한 증상이 발생한 경우, 환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 행위 과정에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의료 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예컨대, 환자에게 의료 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 의료 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이 아닌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 책임을 지울 수 있습니다. 이는 손해의 공평하고 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상에 부합하는 것입니다. 본 판례에서는 원고에게 척수경색의 다른 원인이 될 만한 기왕력이 없었다는 점, 수술 직후 증상이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감정의의 소견 등을 종합하여 피고의 마취 과정에서의 시술상 과실과 원고의 척수경색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했습니다.
2. 의사의 주의 의무: 경막외마취 시 의사는 마취 약물 및 첨가제가 혈관 내로 주입되지 않도록 혈액 흡인 확인, 소량씩 나누어 주입, 환자의 반응 및 생체 징후 관찰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또한, 마취기록지를 작성하여 마취 전후의 상세한 경과를 기록할 의무가 있습니다. 피고는 이러한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3. 책임의 제한: 의사 등이 진료상 과실로 인해 환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는 경우, 그 손해배상의 범위를 정함에 있어서 의사 측 과실의 내용과 정도, 진료의 경위와 난이도, 의료 행위의 결과, 해당 질환의 특성, 환자의 체질과 행태 등 제반 사정을 참작하여 손해 분담의 공평이라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념에 비추어 그 손해배상액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4. 12. 24. 선고 2013다18332 판결 등). 본 판례에서는 경막외마취 후 척수경색이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점, 과실 및 인과관계가 명확히 증명된 것이 아니라 추정의 법리에 따라 인정된 점, 의료 행위 자체에 내재하는 위험성, 그리고 피고가 수술 후 원고의 상태 회복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인 점 등을 고려하여 피고의 손해배상 책임을 50%로 제한했습니다.
4. 손해배상액 산정: 손해배상액은 크게 재산적 손해와 정신적 손해(위자료)로 나뉩니다. 재산적 손해에는 사고로 인한 일실수입(사고 전 직업 및 소득, 후유장해율, 가동연한 등을 고려하여 산정), 기왕 치료비, 향후 치료비, 기왕 및 향후 보조구비, 그리고 개호비(간병비) 등이 포함됩니다. 이 모든 금액은 중간이자를 공제하여 사고 당시의 현가로 계산됩니다. 위자료는 환자의 장애 정도, 치료 경과, 나이, 가족관계 등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법원이 정합니다.
만약 의료 시술 후 하반신 마비와 같은 중대한 이상 증상이 발생한다면, 즉시 상급 병원으로 이송하여 정확한 진단(MRI 등)을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의료 기록, 증상 변화, 치료 내용 등을 상세하게 보관하고 기록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의료 과실 여부가 불분명하더라도, 의료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인과관계를 의학적으로 완벽하게 입증하기 어려운 특성을 고려하여 법원에서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될 경우 환자 측의 입증 책임을 완화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의료 시술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입될 여지가 없고, 시술 직후 중대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적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자에게 시술 전 다른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점 등을 명확히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해배상액 산정 시에는 일실수입, 기왕 및 향후 치료비, 보조구비, 개호비 등 재산적 손해와 함께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모두 포함하여 산정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의료 과실이 인정되더라도, 합병증의 희소성이나 의사의 사후 노력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최종 배상 책임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