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민사사건
대한민국 정부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 범위에 관한 시행령 개정을 14년 넘게 지연하여, 바닥면적 300㎡ 미만의 소규모 소매점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지체장애인 원고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은 정부의 행정입법 부작위가 위법하며 이로 인해 장애인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비장애인 원고의 청구는 기각되었습니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은 바닥면적 300㎡ 미만의 소규모 소매점을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이로 인해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들은 동네 마트나 가게 등 일상생활에 밀접한 소규모 소매점 이용에 큰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2007년) 및 장애인권리협약 국내 발효 (2009년) 등 장애인 접근권 보장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법적 의무가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해당 시행령 개정을 14년이 넘는 장기간 동안 지연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접근권 침해를 지속적으로 겪게 되자, 이들은 국가를 상대로 정신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 범위 관련 시행령 개정을 장기간 지연한 것이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이로 인해 장애인이 입은 정신적 손해에 대해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하는지 여부, 그리고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할 경우 그 손해배상의 범위와 액수, 마지막으로 장애인이 아닌 시민 (유아차 사용자)에게도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 중 원고 1과 원고 2의 국가배상청구 부분을 파기하고, 제1심판결 중 같은 부분에 해당하는 패소 부분을 취소했습니다. 피고인 대한민국은 원고 1과 원고 2에게 각 100,000원 및 이에 대하여 2018년 11월 3일부터 2024년 12월 19일까지는 연 5%, 그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각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원고 1과 원고 2의 나머지 상고 및 원고 3의 상고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대법원은 대한민국 정부가 14년 이상 소규모 소매점에 대한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의무를 규정한 시행령 개정을 지연한 것이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라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평등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에서 도출되는 장애인의 접근권을 침해한 것으로, 정부가 기본권 보장 의무를 장기간 방기하여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위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지체장애인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러나 유아차를 사용하는 비장애인 원고의 불편은 법률이 보호하고자 하는 직접적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다고 보아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본 사건은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의 권리에 관한 협약」(이하 장애인권리협약) 및 헌법상 기본권과 국가배상법에 대한 해석을 다루고 있습니다.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이 법은 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제1조),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접근권을 명시하고 (제4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각종 시책 마련 의무를 부여합니다 (제6조). 특히 편의시설 설치 의무 대상 시설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위임했습니다 (제7조).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권 실현을 목표로 하며 (제1조),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편의시설 등 정당한 편의제공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를 차별로 규정하고 (제4조), 국가에 모든 차별 방지 및 시정 의무를 부과합니다 (제8조).
장애인권리협약: 국제법적으로 장애인의 모든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완전하고 동등하게 실현하도록 촉진하고 보장할 의무를 당사국에 부과하며 (제4조 제1항), 대중에게 개방된 시설에 대한 동등한 접근성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규정합니다 (제9조 제1항).
헌법상 기본권: 대법원은 장애인의 접근권을 헌법 제10조(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제11조(평등권), 제34조(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로부터 도출되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했습니다.
국가의 행정입법의무 불이행에 따른 위법성: 국회가 법률로 행정청에 특정한 사항을 위임했음에도 행정청이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이행하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규정하는 행정입법 부작위는 권력분립 원칙과 법치국가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합니다. 특히 장애인의 접근권과 같이 헌법상 중요한 기본권과 관련된 의무는 사회·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공감대에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하여 실현해야 하는 내재적 한계가 있으며, 이를 장기간 방치할 경우 위법한 부작위로 평가됩니다.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힌 때 국가는 그 손해를 배상하여야 합니다. 본 판결에서 대법원은 정부가 14년 이상 시행령 개정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작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행위로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으므로, 공무원의 고의 또는 과실이 인정되어 국가배상책임이 성립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위자료 산정: 위법한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한 정신적 손해에 대한 위자료를 인정하되, 법률이 위임한 목적과 취지, 침해된 권리의 헌법상 중요성, 침해 정도와 지속 기간, 행정입법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경위, 사법적 권리구제 수단의 유효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직권으로 액수를 정합니다. 여기서는 각 100,000원이 적정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반사적 이익: 공무원의 직무상 의무가 단순히 공공 일반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개인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것이어야 국가배상책임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됩니다. 장애인의 접근권 보장 의무는 장애인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비장애인이 간접적으로 얻는 편익은 반사적 이익에 불과하여 국가배상 청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국가의 행정입법 부작위로 인해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될 경우 국가배상 청구를 통해 구제받을 수 있다는 중요한 선례입니다. 특히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은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법령 개정 지연과 같은 정부의 소극적인 행정으로 인한 피해가 명확하고 장기간 지속되었다면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장애인의 접근권은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 등에서 파생되는 중요한 기본권으로 인정받으며, 이는 단순히 쇼핑의 편의를 넘어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법률이 보호하려는 대상이 아닌 비장애인(예: 유아차 이용자)이 겪는 불편은 법적 보호 대상인 기본권 침해로 보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 판결 이후 2022년 4월 27일 「장애인등편의증진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소규모 소매점의 편의시설 설치 의무 기준이 300㎡ 미만에서 50㎡ 미만으로 축소되었지만, 부칙에 따라 기존 시설에는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많은 소규모 소매점에서 장애인 접근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현재와 미래의 법률 개정 방향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