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재개발
재개발은 상하수도, 도로, 공원 등 정비 기반 시설이 열악하고 노후·불량 건축물이 밀집한 지역에서 새로운 주거 환경을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반면 재건축은 정비 기반 시설은 양호하나 노후·불량 건축물에 해당하는 공동주택이 밀집한 지역에서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입니다. 고층의 화려한 아파트와 각종 커뮤니티 등의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 주택 단지를 짓는 점은 동일하지만, 기존 구역이 빌라나 단독주택이었다면 재개발, 오래된 구축 아파트였다면 재건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건물과 기반 시설을 모두 새로 조성하는 재개발에서는 종전 건물이 빌라이든 상가이든, 토지 및 건축물의 감정평가 금액을 기준으로 하여 아파트나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습니다.
재개발사업의 조합 설립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만 필요합니다. 따라서 조합 설립 단계에서는 ‘아파트 조합원’, ‘상가 조합원’이라는 구분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습니다. 반면, 재건축사업은 조합 설립 인가 시 공동주택과 상가를 구별하여 각각 과반수의 동의를 요구합니다. 또한, 구체적인 분양 계획이 담긴 관리처분계획에서도 부대시설과 복리시설의 소유자인 ‘상가 조합원’에게는 ‘신축 상가를 공급한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도시정비법 시행령 제63조 제2항 제1호). 이러한 이유로 재건축사업에서는 흔히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조합원’ 간 형평성 문제가 자주 제기됩니다.
특히 상가 건물주는 재건축 기간 동안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반환해야 하고, 공사 기간 동안 월세를 받지 못해 손해를 봅니다. 게다가 재건축 이후에도 ‘주택’이 아닌 상가만 받게 된다면 재건축에 선뜻 동의할 이유가 없습니다. 물론 재건축되면 더 좋은 시설의 상가를 분양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권이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이익을 보고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재건축 추진위원회(추진위)가 설립되면 상가 건물주의 동의를 얻는 일이 가장 시급한 과제다. 상가 건물주들도 상가협의회라는 대표 단체를 만들어 추진위원회에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협상합니다. 추진위가 협상에 실패할 경우, 상가를 제외하고 아파트만 재건축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실제로 그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입니다). 얼마 전 제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한 선도지구 선정 기준에서도 상가 동의율이 제외되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처럼 추진위는 시큰둥한 상가 건물주를 조합원으로 참여시키기 위해 낮은 가격의 아파트 입주권을 제공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러면 상가 건물주도 신축 아파트를 분양받아 그곳에서 노후를 보낼 계획으로 재건축 동의서에 서명하게 되고, 조합원으로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하지만 상가 조합원들이 약속대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을까요? 실제로도 많은 상가 조합원이 선택에 따라 상가 또는 아파트를 분양받았습니다. 과거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도 ‘상가 조합원이 상가를 공급받지 않는 경우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습니다’는 유권 해석을 내린 바 있습니다. 심지어 재건축조합 표준 정관에도 ‘상가를 공급받지 않는 경우’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정관이 배포되었으나, 이후 시정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서초구의 한 재건축조합에서는 9명의 상가 조합원들이 추진위로부터 ‘최선을 다해 아파트 입주권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재건축에 동의했습니다. 조합 또한 실제로 이들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부여하기 위해 정관을 바꾸는 안건을 총회에 부의했습니다. 문제는 해당 안건의 찬성률이 56.8%에 그쳐 통과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상가 조합원들은 과반수 조합원의 찬성을 얻었으니 정관을 변경해 아파트 분양권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조합은 입장을 바꿔 이번 안건은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특별결의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조합장은 ‘미안하지만 아파트 분양권을 줄 수 없으며, 원래대로 상가를 받아야 한다'고 입장을 바꿨다. 그러자 상가 조합원들은 조합이 말을 바꿨다며 총회 후 곧바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상가 조합원들은 애초부터 아파트 분양을 받을 생각이었지, 상가를 받을 거라면 재건축에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았음에도 조합 집행부가 이를 협조하지 않은 것에 강한 배신감을 표현했습니다.
제1심 법원은 상가 조합원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9명의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새롭게 부여하더라도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는 제1심의 결과가 뒤집혔고(서울고등법원 2024. 5. 23. 선고 2023나2027555 판결), 대법원은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항소심 판결을 지지했습니다. 법원은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2/3의 특별결의로도 부족하며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시정비법 시행령에 따르면, '새로운 상가를 건설하지 않거나, 새로운 상가의 전체 규모가 종전 규모보다 크게 감소해 일부 상가 조합원에게는 종전 자산 가액에 크게 못 미치는 규모의 상가를 공급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 한해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받아 예외를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고, 설사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본 겁니다. 판결에 따르면,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달하는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얻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결국 9명의 상가 조합원은 추진위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동일한 취지의 판결은 계속됩니다. 서초구의 또 다른 재건축사업과 관련하여, 법원은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의 분양권을 부여하기 위해 조합과 상가협의체가 합의한 사항(최소분양단위규모 추산을 위한 산정비율)을 정관에 반영하기 위해서도 조합원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하여 혼란이 가중된 바 있습니다. 이 판결에는 상가조합의 종전자산가액과 새로 공급받는 공동주택 가액의 비율을 1 미만으로 정하는 것 또한 조합원 전원의 동의를 요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도시정비법 시행령 문언과도 다른 해석이기에 논란이 있습니다(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에 계속 중입니다).
그러면 이 사건과 관련해 기존에 과반수 동의로 진행된 아파트 조합원의 상가 분양은 소급하여 전면 무효가 될까요? 법원은 조합이 변경을 시도한 정관이 도시정비법상의 강행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았고, 강행규정을 위반한 경우 정관은 무효가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제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상가 조합원에게 아파트를 분양하는 관리처분계획이 도시정비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그러한 관리처분계획의 하자는 3개월 이내에 다투지 않으면 효력을 유지하며, 중대하고 명백한 하자가 있어야만 이를 다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중대한 하자라고 하더라도 명백한 하자로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관리처분계획의 결의일로부터 3개월이 지난 경우 더 이상 이를 다툴 수 없기에, 기존 분양을 전면적으로 다투는 혼란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제는 앞으로다. 아파트 분양을 희망하며 재건축에 동의했던 상가 조합원들은 재건축 조합에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할 가능성이 큽니다. 상가 건물주의 동의가 절실한 조합은 이들을 참여시키기 위한 또 다른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상가 조합원에게는 상가만을 공급하는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상가를 제외한 재건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문제가 된 도시정비법 시행령은 법률이 아닌 시행령이기 때문에,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설령 원칙을 유지한다고 하더라도, 조합원의 규모를 고려하지 않고 ‘조합원 전원의 동의’라는 예외 조항을 고집한다면, 사실상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물론 재건축 부지는 조합원들의 사유재산으로, 모든 구성원의 의사를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외도 전혀 허용하지 않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