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채무
오랜 기간 별거하며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된 법률상 부부에게 배우자의 병원 치료비 채무가 민법상 '일상의 가사'에 해당하지 않아 그 채무를 부담할 의무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입니다. 원고는 15년 이상 별거하며 혼인관계가 파탄된 남편 B의 국군수도병원 치료비 채무가 자신에게 없음을 주장하였고 피고 대한민국은 해당 치료비가 일상의 가사에 해당하므로 원고가 연대하여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되어 장기간 별거한 부부의 경우 배우자에 대한 진료 행위가 일상의 가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아 원고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원고 A는 법률상 남편 B와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15년 이상 별거하며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되었고 B는 다른 여성과 사실혼 관계를 형성하여 자녀까지 두었다고 주장했습니다. B가 2024년 3월 25일 국군수도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자 원고는 자신에게 B의 치료비를 부담할 근거가 없으므로 치료비 채무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해달라고 청구했습니다. 이에 피고 대한민국은 B의 치료비 채무가 민법 제832조의 '일상의 가사로 인한 채무'에 해당하며 B의 배우자인 원고가 B과 연대하여 치료비 채무를 부담해야 한다고 반박했습니다.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배우자의 병원 치료비 채무가 민법 제832조에서 규정하는 '일상의 가사로 인한 채무'에 해당하는지 여부, 특히 장기간 별거 등으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된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입니다.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여, 원고의 피고에 대한 B의 치료비 채무가 존재하지 아니함을 확인하고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하였습니다.
재판부는 비록 법률상 혼인관계에 있는 배우자에 대한 진료 행위가 일상의 가사에 해당할 여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단순한 법률상 혼인관계만으로 일상의 가사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부부의 공동생활 상태, 경제적 능력, 그리고 가사 처리자의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원고와 B이 15년 이상 별거하며 부양을 받지 못한 점 등을 근거로 B의 입원치료가 '일상의 가사'에 해당한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채무 부존재를 인정했습니다.
민법 제832조(부부간의 일상가사대리)는 '부부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서로 대리권이 있다.'고 규정하여 부부가 일상적인 생활에 필요한 법률행위를 할 경우 서로 상대방을 대리할 수 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상의 가사'는 부부가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데 통상 필요한 법률행위를 의미합니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9. 3. 9. 선고 98다46877 판결 등)에 따르면 '일상의 가사'의 범위는 부부 공동체의 생활 구조, 정도, 지역사회의 사회통념에 따라 결정되며, 해당 법률행위의 종류와 성질뿐만 아니라 가사처리자의 의사, 목적, 부부의 사회적 지위, 직업, 재산, 수입능력 등 현실적인 생활상태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비록 법률상 배우자 관계라 할지라도 15년 이상 별거하며 사실상 혼인관계가 파탄된 상태에서 발생한 치료비 채무는 이러한 '일상의 가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법률상 혼인관계가 있더라도 장기간 별거 등으로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되었다면 배우자의 채무가 '일상의 가사'로 인한 것으로 인정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상의 가사' 여부는 부부 공동생활의 정도, 부부의 현실적 생활상태, 경제적 능력, 가사처리자의 주관적 의사와 목적 등 다양한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 통념에 따라 판단됩니다. 따라서 유사한 상황에 처했다면 혼인관계의 실질적 유지 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별거 기간, 경제적 교류 여부, 부양 관계, 제3자와의 관계 등)를 충분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