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서울시 공무원 J씨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직장 상사의 폭언에 시달리다 서울시청 건물에서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J씨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J씨가 가입했던 단체보험 및 종신보험의 보험회사들을 상대로 사망보험금을 청구했으나, 보험회사들은 J씨의 죽음을 고의적 자살로 보아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이에 원고들은 J씨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한 것이므로 보험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아 보험금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사망자 J씨는 22년간 시설 및 물품관리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5년 7월부터 일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로 배치되었습니다. 이후 월평균 45시간의 초과근무를 했고, 2015년 11월경부터 직속 상사인 팀장으로부터 '자식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느냐', '이 양반아, 아는 게 뭐야'와 같은 폭언을 지속적으로 들었습니다. J씨는 동료들에게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부서 이동 의사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2015년 12월 23일, 서울시의회 의원으로부터 자료 제출 요구를 받고 보고서를 작성하던 중 제출 기한을 넘겨 독촉을 받았고, 같은 달 24일 새벽 1시 5분경 서울시청 건물 11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했습니다. 유족들은 J씨가 과도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투신한 것이므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보험회사들은 고의적 자살이므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피보험자가 직무 스트레스로 인해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쳐 사망에 이른 경우, 보험 약관상 보험금 지급 면책 예외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즉, 사망자의 투신이 '고의적 자살'인지 아니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고'인지가 핵심이었습니다.
법원은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보험금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사망자 J씨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것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사망자 J씨가 급격한 업무환경 변화, 업무량 증가, 상사의 질책 및 폭언으로 인해 과도한 업무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원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J씨가 사망 당시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구체적으로 J씨가 평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했고 사망 당일에도 특이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며 중증 정신질환이나 약물·음주 영향이 없었고, 투신 직전 사무실을 오가는 등의 행동을 보인 점 등을 종합하여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보험 약관상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이 적용되어 보험회사들은 보험금 지급 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사망보험 계약에서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은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보험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면책 예외 규정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5다5378 판결 등)에 따르면, '자살'은 자기 생명을 끊는다는 것을 의식하고 목적한 행위를 의미하며,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우, 사망이 피보험자의 고의에 의하지 않은 우발적인 사고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인지는 사망자의 나이와 성품,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및 정도, 사망 직전의 구체적인 상태, 주변 상황, 사망 무렵의 행동, 사망 행위의 시기와 장소, 동기, 경위,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합니다 (대법원 2011. 4. 28. 선고 2009다97772 판결 등).
또한,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하기 위해 보험사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사실'을 증명해야 하지만, 피보험자의 사망이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져 면책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는 사실은 보험금을 청구하는 자(유족 등)가 증명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들이 사망자 J씨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점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하여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유사한 상황에서 보험금을 청구하고자 할 때는 피보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행위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과도한 스트레스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피보험자가 정신과 치료를 받은 기록, 사고 당시 심각한 정신적 불안정 상태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증거, 약물이나 알코올 등으로 인해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었음을 입증하는 자료 등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사망에 이르기 직전의 행동이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상태에서 벗어난 의도적인 행동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면 면책 예외 사유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으니, 사망에 이른 경위와 행동 양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