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류/처분/집행
주식회사 A(원고)가 홍콩 법인인 B회사(피고)를 상대로, 피고가 운송을 맡은 선박의 감항능력(항해에 적합한 능력) 결여로 인해 발생한 공동해손 분담금과 체선료에 대해 구상금 또는 불법행위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입니다. 법원은 피고 선박의 발항 전 감항능력 결여와 피고의 상당한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여, 원고에게 공동해손 분담금 미화 1,653,730.46달러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연 6%)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체선료 청구는 선박 고장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보아 기각했습니다.
원고인 주식회사 A는 D로부터 석유 코크스 3만 톤을 매수하였고, 피고인 B회사가 소유한 선박 C를 이용하여 캐나다 프린스 루퍼트항에서 대한민국 광양항으로 운송하기로 했습니다. 피고는 선하증권을 발행했습니다. 선박 C는 2022년 7월 6일 캐나다에서 출항한 지 불과 20여 분 만에 선미관 베어링의 온도가 60℃를 초과하는 '고온 알람'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인 7월 7일에는 주기관에 과부하가 걸렸음을 의미하는 알람이 기록되었고, 주기관이 정지되어 선박은 항해불능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후 피고는 2022년 7월 17일 공동해손을 선포했고, 원고는 공동해손 분담금으로 미화 1,643,400달러를 예납했습니다. 최종 공동해손 분담금은 미화 1,653,730.46달러로 확정되었습니다. 사고 선박은 프로펠러를 절단하고 예인선에 의해 광양항에 도착했으나, 하역 작업이 지연되어 체선료 미화 279,998.31달러가 발생했고, 원고는 D의 청구에 따라 이 체선료를 지급했습니다. 원고는 이 모든 손해가 피고의 선박 감항능력 주의의무 위반으로 발생했다며 피고에게 공동해손 분담금과 체선료에 대한 구상금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고의 운송 선박이 출항 전과 출항 당시에 항해에 적합한 감항능력을 갖추지 못했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운송인인 피고가 선박의 감항능력 유지를 위해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선박 고장으로 인해 원고가 지급한 공동해손 분담금과 체선료에 대해 피고에게 구상책임이나 불법행위책임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국제 거래의 특성상 이 사건에 적용될 준거법(영국법, 캐나다 해상책임법, 대한민국 상법)을 어떻게 결정하고 해석할 것인지입니다.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 선박이 출항 직후 외부 요인 없이 치명적인 고장을 일으킨 점과 선장이 해상사고보고서에 선박이 감항성이 없었다고 표기한 점 등을 종합하여, 선박이 발항 전 또는 발항 당시에 감항능력이 결여된 상태에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또한, 피고가 선박의 선미관 시스템에서 출항 전부터 여러 차례 이상 알람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일상적 조치에 그쳤을 뿐, 알람의 원인을 명확히 확인하거나 체계적인 조사를 진행하지 않아 감항능력에 대한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은 피고가 이 사건 사고와 공동해손에 책임이 있는 자로서 원고가 지급한 공동해손 분담금 미화 1,653,730.46달러를 원고에게 구상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체선료 청구에 대해서는, 원고가 지급한 체선료가 광양항의 혼잡 등 다른 요인으로 인한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선박 고장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기에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기각했습니다.
이 사건에 적용된 주요 법령과 법리적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준거법의 결정 (국제사법 제45조 제1항, 제46조 제1항, 제52조 제1항, 제3항) 국제사법은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에 적용될 법률(준거법)을 정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계약의 경우, 당사자가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선택한 법이 준거법이 됩니다(제45조 제1항). 선택이 없는 경우, 계약과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국가의 법에 따릅니다(제46조 제1항). 이 사건에서는 선하증권에 용선계약 조항이 편입되었고, 용선계약에 영국법이 준거법으로 명시되어 있어 선하증권의 일반적 준거법은 영국법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운송인의 책임 범위에 대해서는 '지상약관(Clause Paramount)'에 따라 선적지국인 캐나다에서 입법화된 헤이그-비스비 규칙, 즉 캐나다 해상책임법이 준거법으로 분할 적용되었습니다. 불법행위의 준거법은 원칙적으로 행위가 이루어진 곳의 법에 따르지만(제52조 제1항),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법률관계가 불법행위로 침해된 경우에는 그 법률관계의 준거법에 따릅니다(제52조 제3항).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선하증권 관계의 준거법과 동일하게 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캐나다 해상책임법이 적용되었습니다.
2. 운송인의 감항능력 주의의무 및 입증책임 (헤이그-비스비 규칙 - 캐나다 해상책임법) 헤이그-비스비 규칙은 해상운송인의 책임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운송인은 선박이 항해를 시작하기 전과 당시에 감항능력(항해에 적합한 상태)을 갖추도록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선박의 불감항성으로 인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 운송인은 자신이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해야만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선박이 출항 직후 외부 요인 없이 고장을 일으킨 점, 선장의 해상사고보고서 진술 등을 근거로 선박이 불감항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고가 선박 고온 알람 등 이상 징후에 대해 충분하고 체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아 상당한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보았습니다. 캐나다 해상책임법의 해석에 따르면, 화물 소유주(원고)는 선박이 불감항 상태였음을 입증해야 하고, 불감항성이 입증되면 운송인(피고)은 감항능력에 대한 상당한 주의의무를 이행했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3. 공동해손 책임 있는 자에 대한 구상권 (상법 제870조) 상법 제870조는 선박과 적하에 대한 공동위험이 선박 또는 적하의 하자나 그 밖의 과실 있는 행위로 인해 발생한 경우, 공동해손 분담자는 그 책임이 있는 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법원은 피고의 감항능력 주의의무 위반으로 이 사건 사고와 공동해손이 발생했으므로, 피고가 상법 제870조에 따라 공동해손에 책임 있는 자에 해당하여 원고에게 공동해손 분담금에 대한 구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4. 지연손해금 이율 준거법인 캐나다법이나 영국법에서 지연손해금 이율에 관한 자료가 충분히 제출되지 않은 경우, 법원은 일반적인 조리에 준하여 대한민국 상법 소정의 연 6% 이율을 적용합니다.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하는 연 12%의 이율은 본래 채무의 준거법이 외국법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국제 해상 운송 시 유사한 문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참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하증권과 용선계약은 국제 운송에서 중요한 법적 문서이므로, 계약서에 명시된 준거법 조항, 특히 운송인의 책임 범위를 규정하는 '지상약관(Clause Paramount)'을 반드시 꼼꼼하게 확인해야 합니다. 이는 일반적인 준거법과 다르게 특정 국제협약이나 외국 법률이 우선 적용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운송인은 선박이 항해를 시작하기 전과 당시에 항해에 적합한 상태(감항능력)를 유지할 상당한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만약 선박이 출항 직후 외부 요인 없이 중대한 고장을 일으킨다면, 운송인 측은 선박이 발항 당시 감항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선박 운항 중 발생하는 이상 징후나 알람은 단순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운송인은 이러한 징후가 나타났을 때,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고 제조사 확인 등 체계적이고 충분한 조치를 취하여 감항능력 주의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공동해손이 발생하여 화물주가 분담금을 지급한 경우라도, 사고의 원인이 운송인의 과실로 밝혀진다면 운송인에게 해당 분담금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체선료 발생 시, 해당 지연이 선박의 고장이나 운송인의 과실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명확하게 입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항구 혼잡과 같은 외부 요인으로 인한 지연이라면 운송인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국제 계약에서 외국 법률이 준거법으로 지정되었으나 그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자료가 부족할 경우, 대한민국 상법 등 유사한 법률이나 일반적인 법해석 기준이 적용될 수 있으므로, 관련 법률 전문가와 상의하여 법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