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 기타 형사사건
1971년 북한 해역에서 납치되어 북한에 1년 가까이 억류되었다가 귀환한 어선원들이 반공법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습니다. 약 50여 년이 지난 후, 이들은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피고인들이 귀환 후 구속영장 발부 없이 장기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으며 이로 인해 얻어진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고인들이 북한에서 한 행동들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협을 피하기 위한 강요된 행위였다고 인정하여, 결국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들은 1971년 5월 17일 어선 'J호'의 선원으로 조업 중 어로 저지선을 넘어 북상했고, 5월 20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괴 경비정에 의해 납치되어 북한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1971년 5월 20일부터 1972년 5월 10일까지 약 1년 동안 북한에 체류하며 공산주의 사상 교육, 북한 선전 활동 동조, 남한 기밀 정보 제공(거주지 호수, 인구, 경찰관 배치 상황, 지형, 선박, 주산물, 교통수단, 한국군 장비 등), 북괴 찬양 연설(피고인 B), 귀환 후 수행할 행동 강령 지령 수수, 북괴로부터 금품 수수 등의 혐의를 받았습니다. 1972년 5월 10일 대한민국으로 귀환하던 중 해경대에 의해 검거되었고, 이후 구속영장 없이 1972년 5월 11일부터 5월 28일까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1973년 12월 26일 광주고등법원에서 반공법 위반 등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의 유죄 판결을 받았고 이는 1974년 1월 3일경 확정되었습니다.
재심 절차에서 피고인들의 초기 구금 및 수사 과정이 적법했는지 여부, 강압적인 수사로 얻어진 진술의 증거능력 인정 여부, 그리고 북한에서의 행위가 형법상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항소법원은 원심판결 중 피고인들에 대한 유죄 부분을 모두 파기하고,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한 원심판결 중 무죄 부분에 대한 검사의 항소는 모두 기각했습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구속영장 없이 불법적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여, 당시의 진술은 물론 이에 기반한 모든 증거를 부적법하게 얻어진 것으로 판단하여 증거능력을 부정했습니다. 나아가 북한에서의 행위들은 생명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강요된 것으로 보아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최종 판단하여, 사건 발생 50여 년 만에 피고인들의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여러 중요한 법률과 원칙을 적용했습니다.
형법 제124조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을 체포 또는 감금한 경우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귀환 후 구속영장 없이 약 18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은 것이 직권남용에 의한 체포·감금에 해당한다고 보아 재심 개시의 주요 사유가 되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 제422조 (재심 사유): 유죄 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등이 허위로 증명되거나,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조항입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의 불법 구금 사실이 재심 사유로 인정되었습니다.
구 형사소송법(1973. 1. 25. 법률 제2450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06조, 제207조 (긴급구속 요건 및 절차): 긴급구속의 요건과 절차를 규정하는 당시의 법률입니다. 피고인들의 구금이 이 규정들이 정한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임의성 없는 진술의 증거능력 부정 원칙: 수사 과정에서 고문, 폭행, 협박 등 강압에 의해 얻어진 진술은 설령 피고인이 자백했더라도 증거능력이 없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입니다. 법원은 불법 구금 상태에서 이루어진 피고인들의 진술은 물론, 그 후 임의성 없는 심리 상태가 계속되어 이루어진 진술들도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형법 제12조 (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해 강요된 행위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규정입니다. 법원은 피고인들이 북한에서 한 행위들이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여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 (무죄 판결):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 무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증거능력 있는 증거가 없어 범죄 사실이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440조 (무죄 등의 공시): 무죄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여 그 내용을 일반에 알리는 조항입니다.
만약 수사기관이 법률적 근거 없이 불법적으로 체포·감금하거나 강압적인 방법으로 진술을 강요한다면, 그렇게 얻어진 진술은 증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이는 피고인이 자백했더라도 그 자백이 자유로운 의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또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명백한 위협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 행동이라면, 이는 '강요된 행위'로 인정되어 형사책임을 면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잘못된 판결이라도 이러한 절차적 하자와 강요된 행위가 명백히 드러날 경우, 재심을 통해 정의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과거사 관련하여 법률이 정한 적법 절차가 지켜지지 않아 억울하게 처벌받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재심 청구를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