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재개발 · 회생/파산
2023년 말 당시 시공능력평가 10위권 대의 대형 건설사인 태영건설이 관리절차(워크아웃)를 신청하였고, 2025년 초에는 시공능력평가 50위권 대의 63빌딩을 건설한 것으로 유명한 신동아건설마저 회생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건설업계의 위기가 고조됐습니다. 100권 대의 중견 건설사의 회생 뉴스 또한 연이어 들리고 있습니다. 중대형 건설사의 위기는 단지 건설사의 구조조정 및 정리해고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공동으로 수급한 다른 건설사나 협력업체, 건설사의 신용보강 하에 PF 대출을 승인한 금융권까지 위험이 전이될 수도 있기에 당국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건설사의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있으면 법원(보통 서울회생법원)은 건설사의 모든 채권자에게 중지명령과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려 개별적인 강제집행을 일체 금지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건설사에 돈을 떼일 걱정으로 온갖 채권자들의 강제집행이 남발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회사의 기반은 무너지고 경영진은 잇따른 형사고소에 대응하느라 난리가 날 거고, 건설사의 회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회생은 회사가 존속될 때의 현금흐름 가치가 청산될 때의 가치보다 큰지 따져보고 회사를 살려보는 겁니다. 하지만 채권자의 무분별한 개별 강제집행을 막지 않으면 채무자인 건설사의 기반 자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집행을 멈추고 일단 회사의 구제방안을 들어보고 살릴지 말지를 살펴봅니다.
법원은 회생절차 개시를 결정하면 관리인을 선임하고 관리인은 채권자와 주주목록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하고 신고된 채권을 시인할지 부인할지를 결정합니다. 회생채권을 확정되면 관리인은 조사위원의 보고와 남은 채무자 재산을 토대로 채무를 감면하거나 이행을 연기하는 회생계획을 작성해 법원에 제출합니다. 회생계획이 관리인집회에서 일정 채권자(3분의 2) 및 담보권자(4분의 3)의 동의를 얻으면 가결되고, 법원의 심사와 인가를 받아 확정되고 회생계획이 이행되면 회생절차는 종료됩니다. 물론 채권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가망이 없거나 채권자 등의 동의를 얻지 않으면 회생절차는 폐지되고 파산절차로 전환되어 채무자의 재산을 환가하여 채권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게 됩니다. 본격적인 빚잔치가 시작되는 겁니다.
공사 도중 건설사가 회생을 신청하면, 공사가 중단되는지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보다 정확하게는 공사도급계약이 해지되는지 여부입니다). 대체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회생절차가 개시된 건설사의 관리인은 여러 사업장의 공사도급계약을 종료하고 손해배상을 감수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행하여 공사대금을 청구할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1항). 이를 ‘미이행 쌍무계약’에 관한 선택이라 합니다. 공사를 중단할지 이행할지의 선택은 관리인의 경영적 판단이나, 회사를 살리자는 회생의 취지상 너무 불리한 조건이 아닌 한 공사도급계약의 이행을 선택하여 공사비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만약 해지를 선택하였다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한편, 건설사는 도급계약 측면에서는 상대방인 시행사(또는 신탁사)에게 계약을 이행하여야 하는 입장이고, 하도급계약의 측면에서는 상대방인 협력업체에게 하도급대금을 지급해야 합니다.[1] 따라서 시행사와 협력업체는 관리인이 (하)도급계약을 해지할지 이행할지 선택하느냐에 따라 불안한 지위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관리인에게 계약을 이행할지 여부에 대한 확답을 최고하여 요구할 수 있습니다. 관리인이 확답의 최고를 받은 날로부터 30일 내에 답변하지 않으면 계약 해지권을 포기한 것(즉, 이행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됩니다(채무자회생법 제119조 제2항).
따라서 시공사에 대한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채권을 신고하라는 통지를 받으면 시행사(또는 신탁사)나 협력업체는 일단 (하)도급계약에 따른 채권을 신고하고, 관리인에게 이행에 대한 확답을 촉구하는 최고서를 보내야 합니다. 이에 대해 관리인이 이행을 선택하거나 확답하지 않으면 (하)도급계약이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러면 관리인은 건설사의 나머지 공사를 완료한 후 시행사(신탁사)에게 공사대금을 청하면 되고, 협력업체도 하도급 공사를 완료한 후 관리인에게 하도급 공사대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공사대금 채권은 회생절차와 관계없이 수시로 변제될 수 있습니다(이를 ‘공익채권’이라 합니다). 즉, 해당 금액은 회생절차에서 감액되거나 면책되지 않으며, 결국 회생절차가 개시되지 않은 경우와 별반 차이가 없고, 공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건설사가 체결한 도급계약에 회생절차가 개시될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거나 자동 해지된다고 명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도산해지조항’이라 합니다.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계약 이행 여부가 불확실해지는 것에 대비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건설사에게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있으면 도산해지조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면, 상대방은 회생절차의 영향에서 벗어나 권리를 직접 소구할 수 있게 되어 채권자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 즉, 시행사로서는 건설사에게 기성 공사대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고, 건설사로서는 회생의 기반이 되는 계약을 이행할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특히 법에서 관리인에게 이행 여부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채무자회생법의 취지와도 맞지 않습니다.
대법원은 일단 도산해지조항을 원칙적으로 유효하다고 보았습니다.[2]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없는 상태에서 도산해지조항을 일률적으로 무효로 보면 계약자유의 원칙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고, 채권자가 채무자의 도산으로 초래될 법적 불안정에 대비할 정당한 이익을 보호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다만, 대법원은 예외적으로 도산해지조항이 부인권의 대상이 되거나 공서양속에 위배된다는 등의 이유로 효력이 부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기준이 추상적이어서 실무적으로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 서울고등법원은 도산해지조항이 무효라고 봤습니다. 이를 인정하면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나 개시 당시 쌍방 미이행 상태에 있는 계약에 대해 별도의 법률 규정이 없는 한 도산해지조항에 의한 해지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회생절차 진행 중 계약 존속이 상대방 또는 제3자의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거나, 회생채무자의 회생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도산해지조항에 의한 해지가 허용된다고 봤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3. 1. 13. 선고 2021나2024972 판결 참조). 즉, 회생절차 개시 신청 전까지 계약이 이행되지 않은 경우 도산해지조항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겁니다.
따라서 현재는 건설사가 회생절차가 개시되면 시행사나 신탁사가 일방적으로 공사도급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해도 효력이 없고, 채권자는 여전히 회생절차에 참가해 권리를 행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