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해 · 교통사고/도주
운전 중 뇌전증 발작으로 교통사고를 낸 후 사고 발생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난 운전자 A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원심은 유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는 피고인의 뇌전증 병력과 사고 당시 상황 등을 종합하여 도주의 고의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여, 도주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하고, 과실로 인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는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자동차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공소를 기각한 사건입니다.
피고인 A는 2021년 7월 26일 낮 12시 50분경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한 식당 앞 도로에서 운전 중 전방 주시 태만으로 피해자 D가 운전하는 올란도 승용차의 뒷부분을 약 4회 가량 들이받았습니다. 이 사고로 피해자 D와 동승자 E는 약 2주간의 요추 염좌 및 긴장 상해를 입었고, 다른 동승자 F는 약 2주간의 경부 염좌 및 긴장 상해를 입었으며, 차량 파손으로 수리비가 발생했습니다. 피고인 A는 피해자들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현장을 떠났다는 이유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뇌전증으로 인해 사고 발생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운전자가 뇌전증 발작으로 사고를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도주치상죄의 핵심 요소인 '도주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와, 범죄 사실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의 존재에 대한 검사의 입증 책임이 어디까지인지가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항소심 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이 사건 공소를 기각했습니다. 이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범죄의 증명이 없으므로 무죄에 해당하지만, 공소사실에 포함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의 점에 대해 공소를 기각하는 이상 따로 무죄를 선고하지 않는다고 보았고,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상) 혐의는 피해자들의 처벌 불원 의사와 자동차 종합보험 가입을 이유로 공소 기각을 결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운전 중 뇌전증 발작으로 인해 사고 발생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에게 도주의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고 피고인의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었으므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상) 부분은 공소 제기의 절차가 법률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가 되어 공소를 기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죄는 교통사고를 내어 사람을 다치게 한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도주할 때 성립하는 범죄로, 운전자에게 사고 발생 사실과 도주하려는 '고의'(확정적 고의뿐만 아니라 미필적 고의 포함)가 있어야 합니다.
범죄의 주관적 요소인 고의의 존재에 대한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며,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증거가 없을 때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대법원 2004. 5. 14. 선고 2004도74 판결 등).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 본문 및 제4조 제1항 본문에 따르면, 차의 운전자가 교통사고로 피해자에게 상해를 입힌 경우에도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반의사불벌죄), 해당 차량이 종합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되어 있는 경우에는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는 '도주'와 같은 특정한 가중처벌 사유가 없는 일반적인 교통사고에 적용됩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 무죄를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2호는 공소 제기의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위반하여 무효인 때에는 판결로 공소를 기각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교통사고 발생 시 운전자에게 의식이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질환이 있다면, 사고 당시 해당 질환의 발병 가능성 및 그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 여부를 명확히 입증할 수 있는 의료 기록이나 진료 내역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고가 경미하더라도 피해자 구호 조치나 경찰 신고, 보험사 연락 등 필요한 조치를 반드시 취해야 합니다. '도주의 고의'가 없었음을 주장하는 경우라도 현장을 이탈하면 의심을 살 수 있습니다.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라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거나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치상' 부분은 공소 기각될 수 있으나, '도주' 혐의는 별개로 판단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가더라도 검사가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 사실을 증명하지 못하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되어 무죄가 선고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두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