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1급 도선사인 원고 A가 대형 컨테이너선 F호를 H항으로 도선하는 과정에서, 선박의 추진기와 타가 수면 위로 노출되어 조종 성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임을 알면서도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과도한 속도로 운항 및 선회를 지시하여 항만 내 크레인과 다른 선박에 연쇄적으로 충돌시킨 사고입니다.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원고 A에게 6개월의 도선사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고, 원고는 이 처분이 위법하다며 취소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원고 A의 절차적 위법 주장을 모두 기각하고, 실체적으로 원고에게 중대한 과실이 있으며 징계양정 또한 적정하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2020년 4월 6일, 15만 톤급 컨테이너선 F호는 선박 수리를 마친 후 H항으로 입항 중이었습니다. 이 선박은 평형수가 약 4만 톤의 용량 중 2,993톤만 주입되어 추진기(직경 9.9m)와 타가 수면 위로 약 3.2m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추진 효율과 타의 조종 능력을 현저히 떨어뜨리는 상태였습니다. 원고 A 도선사는 이러한 선박 상태를 인지하고도 당초 배정된 예선(4,000마력 1척, 5,000마력 1척)을 더 강력한 예선(6,500마력 1척, 5,000마력 1척)으로 변경한 후 도선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H항으로 진입하면서 동방파제와 서방파제를 각각 9.2노트, 9.5노트의 높은 속도로 통과했습니다. 이후 L 무인도를 우현에 두고 선회하는 과정에서 8.7노트의 높은 속도를 유지했으며, 회두(回頭) 후 부두 안벽과 불과 100m 이내로 근접했습니다. 14시 49분경 2부두 8번 선석에 위치한 컨테이너 크레인(85, 84, 83, AC호기)과 연달아 접촉했고, 이후 우회두하는 과정에서 2부두 7번 선석에 접안된 컨테이너선 AD호의 좌현 선수부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F호 및 AD호에 손상이 발생했고, 크레인 AE호기와 AC호기는 전손, AF호기와 AG호기는 심하게 손상되었으며, AC 크레인 기사 1명이 무릎과 발목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에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은 원고 A에게 6개월의 도선사 업무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도선사인 원고 A의 선박 조종 및 의사소통 과실이 해양사고의 주된 원인이었는지, 해양사고심판원의 징계 절차에 위법은 없었는지, 그리고 6개월의 도선사 업무정지 처분이 적정한지에 대한 판단이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원고 A의 모든 절차적 위법 주장(증거신청 기각, 선장 해양사고관련자 미지정, 허위공문서 증거 채택, 특별심판부 구성 요청 기각)을 배척했습니다. 실체적 판단에서는 원고 A가 도선업무 개시 당시부터 선박의 조종 성능 저하를 인지하고도 부적절한 도선 계획을 세웠고, 과도한 속도로 운항하며 선장과의 의사소통이 불명확했던 점 등을 인정하여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선장의 임의 조치나 돌풍이 사고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원고의 과실을 상쇄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으며, 6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은 관련 법령 및 징계 기준에 비추어 적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원고 A의 청구는 기각되었고, 중앙해양안전심판원의 6개월 도선사 업무정지 재결 처분은 유지되었습니다. 소송 비용은 원고 A가 부담하게 되었습니다.
본 판결은 해양사고 발생 시 도선사의 책임과 징계에 대한 중요한 법률과 원칙을 다루고 있습니다.
도선사의 주의의무(도선법 제18조 제2항, 제20조 제1항 및 관련 법리): 도선사는 도선구 내에서 선박을 안전하게 운항하도록 보조하는 선박운항 전문가로서 고도의 주의의무를 부담합니다. 특히 강제 도선 대상 선박을 조종할 경우 그 주의의무는 더욱 강화됩니다. 도선사는 도선 개시 전 선박의 감항능력을 충분히 확인하고, 만약 감항능력이 불충분하거나 운항에 위험이 예상될 경우 도선을 거절하거나 철저한 도선 계획을 수립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본 사건에서 원고는 추진기 및 타가 노출되어 조종 성능이 저하된 선박의 상태를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충분히 반영한 면밀한 도선 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채 도선을 개시한 과실이 인정되었습니다.
도선 중 선박 운항 지시 및 의사소통 의무(IMO 결의 및 관련 법리): 도선사는 선박의 안전한 도선을 위해 선장과 상호 정보를 교환하고 적절한 의사소통 체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도선 계획이 변경되거나 위험 상황 발생 시 이를 선장에게 명확하게 전달해야 합니다. 지시를 할 때에는 상대방이 오해하지 않도록 공인된 표현이나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본 사건에서 원고는 선박의 충돌 위험이 구체화된 상황에서 'Sea speed'와 같이 불명확한 속도 지시를 하였고, 접안을 포기하고 항내를 빠져나가려는 자신의 도선 계획 변경을 선장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의사소통의 과실이 인정되었습니다.
해양사고관련자 징계 기준(해양사고심판법 제5조 제2항, 제6조 제1항·제2항 및 해양사고관련자 징계량 결정 지침): 해양사고가 해기사나 도선사의 직무상 고의 또는 과실로 발생한 경우, 해양안전심판원은 재결로써 당사자에게 면허 취소, 업무정지(1개월 이상 1년 이하), 또는 견책 등의 징계를 명할 수 있습니다. 도선법에도 징계 규정이 있으나, 해양사고 발생 시에는 해양사고심판법이 우선 적용됩니다. 징계량 결정 지침에 따르면 '중과실'로 인한 '경손' 및 '3급 사상자' 발생 시 선박 손상에 대해 3개월 이상 10개월 이하, 시설물 손상에 대해 4개월 이상 1년 이하의 업무정지 또는 면허취소 처분이 가능합니다. 또한 사고로 인한 피해액이 현저히 큰 경우 징계량이 가중될 수 있습니다. 본 사건에서 원고의 과실은 '중과실'로 평가되었고, 선박 및 시설물에 발생한 큰 피해와 1명의 부상자를 고려할 때 6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은 위 징계 기준 범위 내에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증거 채부 및 특별심판부 구성의 재량권(해양사고심판법 제48조 제1항, 제66조, 제22조의2 제1항): 해양안전심판원은 증거 채택 및 조사 방법, 그리고 특별심판부 구성 여부에 대해 재량권을 가집니다. 본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가 주장한 증거 신청 기각이나 특별심판부 미구성 등이 심판원의 재량권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재결의 결론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증거도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선박 조종과 관련된 유사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반드시 유념해야 합니다.
도선사는 선박의 특성 이해 필수: 선박의 흘수, 평형수 상태, 추진기 및 타의 노출 여부 등 조종 성능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요소를 사전에 면밀히 확인해야 합니다. 특히 추진기나 타가 수면 위로 노출되는 상황은 선박의 조종 성능을 크게 저하시키므로, 이러한 경우 일반적인 운항 방식으로는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사전 정보 교환 및 도선 계획 중요: 도선 시작 전 선장으로부터 도선 카드, 조종 특성표 등 선박 정보를 충분히 확인하고, 선박의 상태와 항만 환경을 고려하여 안전한 도선 계획을 명확히 수립해야 합니다. 도선 중 상황 변화로 인해 계획을 수정해야 할 경우, 즉시 선장에게 변경된 계획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명확하고 표준화된 의사소통: 긴급 상황이거나 위험도가 높은 상황일수록 선장과의 명확하고 표준화된(예: 국제해사기구(IMO) 권고 표준 문구 등) 의사소통이 필수적입니다. 모호한 지시나 선장의 오해를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은 피하고, 필요한 경우 엔진 RPM이나 타각 등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여 정확한 지시가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속도 조절 및 선회 계획: 항만 진입 시 선박의 크기, 조종 성능, 주변 환경(접안 시설, 다른 선박, 수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적절한 속도를 유지하고 선회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특히 조종 성능이 저하된 선박은 일반적인 선박보다 훨씬 낮은 속도로 운항하고 선회해야 하며, 충분한 이격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선 활용 계획: 예선의 마력과 배치 등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선박의 조종 성능이 저하된 경우에는 단순히 예선의 마력을 높이는 것뿐만 아니라, 선박의 속도가 낮아 예선의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지점에서 예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해야 합니다. 고속에서는 예선이나 선수횡추진기(bow thruster)의 효과가 미미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속도 조절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기상 조건 고려: 돌풍과 같은 급변하는 기상 조건은 선박의 안전 운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도선 계획 수립 및 운항 중 항상 기상 변화를 주시하고 이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예상 가능한 정도의 바람은 도선사의 주의의무 범위 내로 간주될 수 있으며, 그러한 환경에서도 안전을 확보할 책임은 도선사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