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선박기간보험에 가입된 선박이 최신 해도가 비치되지 않은 상태로 운항 중 좌초되어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보험회사는 선박의 감항능력 결여를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고, 선박 소유자는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최신 해도 미비치가 물적 감항능력 결여에 해당하며, 선박 소유자의 동생이자 실질적인 선박 관리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방치한 '악의'가 인정되므로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책임을 면한다고 판결했습니다.
피고 B는 원고 A 주식회사와 선박기간보험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후 피고의 선박이 필리핀 해역에서 좌초되고 화재로 소실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피고는 원고에게 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원고는 선박에 스카보루 산호초 등 필리핀 해역의 위험물이 표시된 최신 해도가 비치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는 감항능력 결여에 해당하고 피고 측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피고는 보험금 지급을 구하는 반소(맞소송)를 제기하면서 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선박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의 의미와 피보험자의 '악의' 요건이 무엇인지, 최신 해도가 비치되지 않은 것이 감항능력 결여에 해당하는지, 그리고 감항능력 결여가 좌초 및 화재와 같은 손해 발생에 대한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최신 해도가 비치되지 않아 이 사건 선박이 물적 감항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피고의 동생 D가 감항능력 결여 사실을 알았거나 알면서도 이를 방치한 '악의'가 인정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좌초가 화재 발생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아 그 사이에 인과관계가 충분히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에 따라 원심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고,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여 보험회사가 보험금 지급 의무가 없다는 결론을 확정했습니다.
이 판결은 선박보험에서 선박의 감항능력 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이를 관리하는 피보험자나 그 대리인의 책임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특히, 피보험자의 '악의' 개념이 단순히 적극적인 인지를 넘어 알 수도 있었음에도 방치한 경우까지 포함하며, 피보험자의 '분신'으로 간주되는 자의 악의도 본인에게 적용될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또한, 감항능력 결여가 연쇄적인 사고로 이어져 발생한 모든 손해에 대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사건은 영국 해상보험법을 준거법으로 적용했습니다. 이 법리에 따르면 해상보험에서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은 '특정 항해에서 통상적인 위험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선박기간보험에서 보험자가 감항능력 결여를 이유로 면책되기 위해서는, 손해가 감항능력 결여로 인해 발생해야 하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감항능력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되어야 합니다. 여기서 '피보험자의 악의(privity)'는 감항능력 결여 원인 사실뿐 아니라 그로 인해 선박이 통상적인 해상 위험을 견딜 수 없게 된 사실을 아는 것을 의미하며, 적극적인 인지뿐만 아니라 알 수도 있었는데 방치한 경우도 포함됩니다. 또한 피보험자의 '분신(alter ego)'으로 간주될 수 있는 자의 악의도 피보험자의 악의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선박 소유자 및 운항자는 항해에 필요한 물적 감항능력(예: 최신 해도, 항해 장비)과 인적 감항능력(예: 유자격 선원)을 항상 유지해야 합니다. 특히 항해 구역에 맞는 최신 해도를 반드시 비치하고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보험 계약 시에는 감항능력 관련 약관과 보험자의 면책 조항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선박 관리 대리인의 행위나 인지가 선박 소유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사고 발생 시 감항능력 결여 여부와 그로 인한 손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