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금전문제 · 노동
주식회사 A는 B 주식회사에 E고속도로 신설사업 중 J지하차도 구간의 새로운 공법에 대한 설계 용역을 제공하고 용역비 3억 5천 7백여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A사는 주위적으로는 설계 용역 계약이 성립했다고 주장했으며 예비적으로는 계약이 성립하지 않았더라도 B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배되는 불법행위이므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A사의 주장을 모두 기각했습니다.
수도권 물류 여건 개선을 위한 E고속도로 신설사업 중 4공구 J지하차도 구간 공사에서 기존 박스형 개착공법으로 인한 교통정체, 소음, 분진 등 민원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사업 시행자인 G 주식회사와 수급인인 B 주식회사는 공법 변경을 검토하게 되었고 원고 주식회사 A는 자체 특허 공법인 선지보공법을 제안하며 설계도면을 제공했습니다. 원고는 피고와의 공법 검토 회의 등을 거쳐 설계 작업을 진행했으나 피고는 원고의 공법에 안전성 문제와 공사비 증가 우려를 제기하며 최종적으로는 원고의 공법을 채택하지 않고 L 주식회사의 파이프루프공법으로 설계 변경을 승인받아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자신이 제공한 설계 용역에 대한 보수를 청구하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원고와 피고 사이에 고속도로 지하차도 신설공사에 관한 설계 용역 계약 또는 하도급 계약이 성립했는지 여부. 둘째, 만약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피고가 계약 교섭 단계에서 원고에게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부여했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하여 불법행위가 성립하는지 여부.
법원은 원고 주식회사 A의 피고 B 주식회사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설계 용역 계약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인 보수 금액, 공사 시행 방법, 보수 지급 방법 등에 대한 구체적인 의사 합치가 없었으므로 계약이 성립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피고가 원고에게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부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며 피고는 안전성 및 공사비 문제를 고려하여 다른 공법을 채택할 수 있었으므로 계약 체결 거부가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되는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본 사건은 민법상의 도급 계약 성립 요건과 불법행위 책임 특히 계약 교섭 과정에서의 신의성실 원칙 위반 여부가 핵심입니다.
1. 도급 계약의 성립 (민법 제664조)
민법 제664조는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느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그 효력이 생긴다'고 규정합니다. 계약이 성립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계약의 본질적 또는 중요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인 의사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에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공사금액이 크고 대규모로 진행되는 도급 공사의 경우 공사금액 외에도 구체적인 공사 시행 방법, 준비, 공사비 지급 방법 등 중요한 사항에 대한 합의가 없으면 계약이 체결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견적서나 서류를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지 않습니다.
2. 불법행위 성립 여부 (계약 교섭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어느 일방이 계약 교섭 단계에서 상대방에게 계약이 확실히 체결되리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부여했고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여 손해를 입었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했다면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상 계약 자유 원칙의 한계를 넘는 위법한 행위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신뢰 손해'에 한정되며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될 것이라고 믿고 지출한 계약 준비 비용과 같이 그러한 신뢰가 없었더라면 통상 지출하지 않았을 비용 상당의 손해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제안서, 견적서 작성 비용 등 계약 체결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에 지출된 비용은 신뢰 손해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가 원고에게 '확실하게 계약이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부여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유사한 사업 상황에서 계약 당사자들은 다음 사항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1. 중요한 공사나 용역 계약을 체결할 때는 반드시 서면으로 계약을 작성하고 공사금액, 공법, 공사 기간, 보수 지급 방식 등 계약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 명확하게 합의해야 합니다. 2. 단순히 제안서나 견적서, 설계도면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는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구체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해야 합니다. 3. 계약 교섭 단계에서 상대방이 계약이 확실하게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주었는지 여부는 주고받은 문서나 의사 표시의 내용, 진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됩니다. 단순히 새로운 공법을 제안하고 검토를 위한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만으로는 이러한 기대를 부여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4. 발주처나 수급인은 기업 경영 활동의 일환으로 여러 제안을 검토하고 안전성, 비용 효율성 등을 고려하여 최종 공법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제안된 공법에 중대한 안전상의 문제나 과도한 비용이 예상될 경우 이를 채택하지 않는 것은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