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망인 임○○ 씨는 1994년부터 ○○산업개발에서 전기 사용량 검침 업무를 담당하다 2011년부터 검침총괄 담당이 되었습니다. 2014년 5월 새벽, 망인이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자, 망인의 배우자인 원고는 망인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이 자살을 유발할 정도의 스트레스나 정신질환이 없었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내렸습니다. 이에 원고는 이 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원격검침 확대 시행에 따른 고용 불안감으로 인한 정신질환 악화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여 이루어진 것이라고 판단하여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했습니다.
망인은 ○○산업개발 제주지점의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외근 검침원 36명의 업무를 분배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매년 정기적인 업무분장과 외근 검침원들의 성과수수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재분배 업무는 망인에게 상당한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또한, 정원보다 5명 이상 부족한 인력으로 인해 검침 일정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고 '하루하루 무사히 검침이 마무리될지 속이 탄다'는 유서를 남길 정도로 업무 부담이 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14년 초 ○○○○○○ 공사의 원격검침 사업이 제주시 4만호에 확대 시행되면서 7명가량의 외근 검침원이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망인은 이들 검침원을 관리하고 인력 감축 압박 속에서 남은 직원들에게 업무를 재분배해야 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에 시달렸습니다. 유서에서도 '7명의 일자리가 없어진다. 힘없는 약자는 막을 수가 없네'라며 고용 불안에 대한 막막함을 토로했습니다.
망인은 이미 2013년 5월부터 '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로 진단받고 약물치료를 받고 있었으며, 2013년 10월에는 약의 용량이 2배로 증가할 정도로 증상이 악화되었습니다. 감정의는 망인이 검침총괄 업무를 맡은 시점과 정신건강 문제가 시작된 시기가 비슷하여 업무와의 관련성을 유추할 수 있고, 우울증의 악화가 자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원고는 이러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고용 불안감으로 인한 정신질환 악화가 망인의 자살로 이어졌다고 주장했으나, 피고 근로복지공단은 망인에게 자살에 이를 만한 정신질환이 특정되지 않고 업무 관련성도 없다고 주장하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거부하면서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망인의 자살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수 있는지, 즉 과도한 업무상 스트레스와 원격검침 확대 시행에 따른 고용 불안감이 망인의 정신질환을 악화시켜 자살에 이르게 하는 데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었는지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입니다.
법원은 피고(근로복지공단)가 2015년 9월 23일 원고에게 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하고, 소송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망인이 검침총괄 업무와 원격검침 확대 시행에 따른 고용 불안감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이로 인해 기존에 앓고 있던 정신질환(수면장애, 불안 및 우울병 장애)이 악화되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자살에 이르게 되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되므로, 근로복지공단의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은 위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업무상의 재해' 인정 여부가 핵심입니다. 이 법 조항은 근로자가 업무수행 중 업무에 기인하여 발생한 부상, 질병, 신체장애 또는 사망을 업무상 재해로 보며,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업무와 재해 사이의 인과관계는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규범적 관점에서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그 증명이 있다고 봅니다. 특히, 근로자가 극심한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그에 따른 정신적인 고통으로 우울증세가 악화되어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나 행위 선택 능력, 정신적 억제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합리적인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하여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면, 망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이때, 망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인 취약성이 자살 결의에 영향을 미쳤거나 자살 직전 정신병적 증상에 이르지 않았다고 해도 달리 볼 것은 아닙니다.
본 판결에서 법원은 망인이 검침총괄 담당으로서 겪은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와 ○○○○○○ 공사의 원격검침 사업 확대 시행으로 인한 고용 불안감 및 인력 감축의 압박이 망인의 기존 정신질환(상세불명의 비기질성 수면장애, 혼합형 불안 및 우울병 장애)을 지속적으로 악화시켰고, 이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자살에 이르게 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정한 업무상 재해의 인과관계 법리에 부합하는 것으로 보아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한 것입니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심화되어 정신질환이 발생하거나 악화되고, 이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되는 경우에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참고해 증거를 수집하고 주장을 펼칠 수 있습니다.
첫째, 업무 환경과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기록을 철저히 남겨야 합니다. 과도한 업무량, 인력 부족, 새로운 사업 도입, 고용 불안감 조성 등 구체적인 스트레스 상황과 이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예: 업무 일지, 사내 공고, 언론 기사, 동료 진술 등)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둘째, 정신과 진료 기록은 필수적인 증거입니다. 정신과 진료 시점, 진단명, 약물 처방 내역, 치료 경과, 의사의 소견서 등을 통해 정신질환의 발병 및 악화 시기와 업무상 스트레스 요인과의 연관성을 입증해야 합니다. 또한, 수면제 복용 기록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중요합니다.
셋째, 유서나 주변인의 진술을 통해 망인의 심리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망인이 남긴 유서에 업무상 고충이나 정신적 어려움이 명시되어 있다면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또한, 동료나 가족들이 망인의 평소 성격 변화, 업무상 고충 토로, 불안감 호소 등을 증언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자살이라도,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 악화가 자살의 주요 원인임을 입증할 수 있다면 재해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때는 의학적 소견(진료기록 감정 등)을 통해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그리고 자살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규범적 관점에서 명확히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