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설계 용역비 미지급을 둘러싼 분쟁 판결

건축 설계 및 감리 회사인 원고 주식회사 A는 피고 B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2차와 3차 용역계약에 따른 미지급 용역대금 및 지연손해금 총 801,451,227원의 지급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제1심 법원은 2차 용역대금 및 3차 용역대금 중 일부 채권은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지나 소멸하였고, 3차 용역대금 중 나머지 채권은 발생하였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항소하면서 예비적으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추가했으나, 항소심 법원 역시 원고의 항소와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제1심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원고(항소인) 주식회사 A: 건축 설계 및 감리 등을 주요 업무로 하는 회사로, 피고에게 건축 설계 용역을 제공하고 그 대금을 청구하는 입장입니다.
• 피고(피항소인) B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서울 서대문구 일대에서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시행할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으로, 원고에게 용역을 의뢰하고 그 대금 지급 의무를 가진 입장입니다.

분쟁 상황

피고 조합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2007년 10월 4일 'A'라는 상호로 건축사 영업을 하던 D과 1차 건축설계용역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후 사업구역 면적 변경으로 2010년 6월 24일 D과 2차 설계변경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이 2차 계약에서는 용역대금의 45%인 1,399,167,000원을 사업시행변경승인 시 지급하기로 약정했습니다. D은 2010년 9월 6일 E에게 용역계약 관련 모든 권리·의무를 양도했고, 이후 원고 주식회사 A가 2010년 10월 15일 E를 대표이사로 하여 설립된 뒤 기존 D의 개인사업체가 법인으로 변경되었음을 피고에게 통지하고 동의를 얻었습니다. 피고는 2012년 7월 18일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받았습니다. 원고와 피고는 2014년 10월 1일 다시 3차 설계계약을 체결했으며, 이 계약에서 용역계약 시 10%, 기본설계 인도시 30%, 사업시행변경승인 시 30%, 실시설계 인도시 30%를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피고는 2018년 2월 1일 원고를 상대로 1차 및 2차 용역계약이 조합 총회 결의 없이 체결되어 무효이므로, 원고가 지급받은 용역대금과 차용금을 반환해야 한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1심에서 피고 승소 판결이 나왔으나, 항소심에서 계약이 사후에 적법하게 추인되었고 원고가 제공한 용역의 대가가 적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피고의 청구가 전부 기각되었으며, 대법원 상고도 기각되어 원고 승소로 확정되었습니다. 한편, G은 원고의 피고에 대한 용역대금 채권 중 일부를 양수받아 양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소송에서 항소심은 2차 용역대금은 소멸시효 완성, 3차 용역대금 중 기본설계 인도시 대금은 채권 미발생으로 기각하고, 3차 용역대금 중 용역계약시 대금은 소멸시효가 중단되어 일부 인용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이후 원고는 2020년 8월 31일 미지급된 2차 및 3차 용역대금 801,451,227원과 그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이 사건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핵심 쟁점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원고가 청구한 용역대금 채권에 민법상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는지 여부입니다. 둘째,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언제부터인지, 즉 2차 용역대금의 경우 사업시행변경인가일인 2012년 7월 18일부터 진행되는지, 아니면 원고의 주장대로 선급금 정산 이후인 2015년 8월 18일부터 진행되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소멸시효가 이미 경과한 후 원고가 관련 사건에서 피고의 청구에 대해 적극적으로 응소한 것이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되는지, 또는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넷째, 3차 용역계약 중 기본설계 인도 시 지급하기로 한 용역대금 채권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여부입니다. 다섯째, 원고의 예비적 청구로서, 용역계약이 묵시적으로 해제되었다고 보고 피고가 원고로부터 얻은 용역대금 상당의 이익을 부당이득으로 반환해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법원의 판단

항소심 법원은 원고 주식회사 A의 항소와 이 법원에서 추가한 예비적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는 제1심 법원의 판결과 동일하게, 2차 용역계약 관련 용역대금 채권과 3차 용역계약 중 일부 용역대금 채권은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소멸했다고 판단했으며, 3차 용역계약 중 기본설계 인도 시 지급하기로 한 용역대금 채권은 발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용역계약이 묵시적으로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행된 업무에 대해서는 계약의 효력이 소급적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용역계약에 따라 정산되어야 한다고 판단하여 부당이득반환청구 또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항소 제기 이후의 소송비용은 모두 원고가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결론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2차 용역계약 관련 청구에 대하여:

1. 소멸시효 적용 및 기산점: 2차 용역대금 채권은 건축 설계와 관련된 채권으로 민법 제163조 제3호에 따라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용역대금 지급 시기가 '사업시행변경승인 시'로 명시되어 있었고, 피고가 2012년 7월 18일 사업시행변경인가를 받았으므로, 이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됩니다.
2. 소멸시효 완성: 원고가 이 사건 소송을 2020년 8월 31일에 제기한 것은 기산점인 2012년 7월 18일로부터 3년이 훨씬 지난 시점이므로, 소멸시효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3. 원고의 주장 불인정: 용역대금 지급 시기를 변경하는 별도 합의가 없었고, 선급금 정산 완료 후에야 청구가 가능하다는 원고의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또한, 원고가 다른 관련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응소하기 시작한 시점인 2018년 5월 9일은 이미 소멸시효 기간인 3년이 경과한 후이므로, 소멸시효 중단 효과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주장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4. 부당이득반환 청구 불인정: 설령 2차 용역계약이 원고 주장대로 묵시적으로 해제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수행된 용역 업무에 대해서는 해제의 소급효를 제한하여 계약에 따라 정산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피고가 용역대금 상당의 부당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3차 용역계약 관련 청구에 대하여:

1. 기본설계 인도시 대금: 3차 용역계약 중 '기본설계 인도시' 지급하기로 한 327,300,000원의 용역대금은 원고가 기본설계 도서를 작성하여 피고에게 인도했음을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여, 채권 자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 용역계약시 대금 소멸시효: '용역계약시' 지급하기로 한 109,100,000원의 용역대금 채권은 계약 체결일인 2014년 10월 1일(실질적인 지급 기한은 2014년 12월 1일로 판단)로부터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며, 이 역시 원고의 응소 전에 소멸시효가 이미 경과했다고 판단했습니다.
3. 부당이득반환 청구 불인정: 3차 용역계약과 관련해서는 원고가 업무를 수행하여 피고에게 이익이 발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피고가 부당이득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이 사건에 적용된 주요 법령과 법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민법 제163조 제3호 (3년의 단기소멸시효): 이 조항은 '도급받은 자, 기사 기타 공사의 설계 또는 감독에 종사하는 자의 공사에 관한 채권'에 대하여 3년의 짧은 소멸시효 기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건축 설계 및 감리 업무는 여기에 해당하므로, 이 사건에서 원고의 용역대금 채권에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되었습니다. 이는 일반적인 채권의 소멸시효(10년)보다 훨씬 짧으므로, 해당 업무와 관련된 채권을 가진 사람은 시효 기간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2. 민법 제166조 제1항 (소멸시효의 기산점): 이 조항은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때'란 법률상의 장애 사유(예: 기한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거나 조건이 성취되지 않은 경우)가 있는 때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채권의 존재나 행사 가능성을 알지 못했거나, 사실상 정산을 기다리는 등의 사유는 법률상 장애 사유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용역계약에 명시된 지급 시기(예: 사업시행변경인가 시)가 도래한 때부터 소멸시효가 진행된다고 판단되었습니다.
3. 소멸시효 중단 사유 (재판상 청구 등): 민법은 소멸시효의 중단 사유로 재판상 청구, 압류, 가압류, 가처분, 승인 등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응소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것도 재판상 청구에 준하여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경우, 원고가 관련 사건에서 적극적으로 응소하기 시작한 시점은 이미 3년의 단기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한 후였으므로, 소멸시효 중단 효력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소멸시효는 완성되기 전에 중단 사유가 발생해야 효력이 있습니다.
4.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에도 채무자가 이를 주장하는 것이 예외적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원고의 응소 이전에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된 상황이었고, 피고의 소멸시효 항변이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다고 판단하여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5. 부당이득반환의 원칙: 계약이 해제되거나 무효가 되는 경우, 계약의 효력이 소급하여 상실되므로 이미 이행된 급부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법원은 2차 용역계약의 경우, 비록 묵시적으로 해제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행된 업무에 대해서는 해제의 소급효를 제한하여 용역계약에 따라 정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이미 급부가 이루어지고 상대방이 그 이익을 누린 경우, 전면적인 소급 무효로 인한 법률관계의 불안정성을 방지하려는 취지입니다. 3차 용역계약에 대해서는 원고가 용역 업무를 수행하여 피고에게 이익이 발생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참고 사항

유사한 문제 상황에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1. 계약 내용의 명확화: 용역 대금의 지급 시기와 조건을 계약서에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명시해야 합니다. 특히 '사업시행변경승인 시'와 같이 특정 절차의 완료를 조건으로 하는 경우, 해당 절차 완료일을 정확히 인지하고 채권 발생 시점을 파악해야 합니다.
2. 소멸시효 기간 인지 및 관리: 건축 설계나 감리 용역과 같은 공사에 관한 채권은 민법 제163조 제3호에 따라 3년의 단기소멸시효가 적용됩니다. 일반 채권(10년)보다 짧으므로, 채권자는 시효가 완성되기 전에 권리 행사를 위한 조치(예: 소송 제기, 지급명령 신청, 내용증명 발송을 통한 최고 후 6개월 내 재판상 청구 등)를 취해야 합니다.
3. 소멸시효 기산점의 중요성: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됩니다. 이는 계약서상 정해진 지급 기한이 도래하거나, 조건이 성취되어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게 된 시점을 의미합니다. 당사자가 실제 권리의 존재를 알았는지 여부나, 정산 예정 등 사실상의 사유는 기산점을 늦추는 법률상 장애 사유로 인정되지 않습니다.
4. 용역 수행의 증거 확보: 계약서상 '기본설계 인도 시'와 같이 용역 업무의 특정 단계 완료를 대금 지급 조건으로 하는 경우, 해당 업무를 완료하고 상대방에게 인도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예: 문서 수령 확인서, 이메일, 회의록 등)를 철저히 보관해야 합니다.
5. 소멸시효 중단의 효과: 다른 소송에서 적극적으로 응소하는 것은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될 수 있지만, 이는 소멸시효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미 소멸시효 기간이 경과한 후에 이루어진 응소는 소멸시효 중단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6. 부당이득반환 청구의 제한: 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이미 이행이 완료되어 상대방이 그 이익을 얻은 부분에 대해서는 부당이득반환 청구가 아닌, 기존 계약에 따른 정산의 문제로 다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계약의 해제가 항상 모든 이익을 소급적으로 부당이득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부당이득이 성립하려면 상대방이 이익을 얻고 그로 인해 청구인이 손해를 보았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