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 노동
세종시 산업단지에서 유해 화학물질 누출 사고가 발생하자 한 공장의 노동조합 지회장이 소속 조합원들에게 대피를 권유하고 작업을 중단하게 한 일로 회사가 징계를 내렸습니다. 이에 노동자는 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하며, 원심이 이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2016년 7월 26일, 세종시 C산업단지 내 D 공장에서 화학물질 '티오비스' 약 300ℓ가 두 차례에 걸쳐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티오비스는 반복 노출 시 인체에 유해하며, 상온에서 분해되면 독성 기체인 황화수소를 발생시킵니다. 사고 직후 소방본부 등은 대피방송을 했고, 반경 1km 이내 마을 주민들에게 창문 폐쇄 및 외부 출입 자제를 당부했습니다. 누출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의 근로자 30명도 두통,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원고 A는 피고 회사의 노동조합 지회장으로서 누출 소식을 듣고 고용노동부에 대책 마련을 요청하고 회사에 신속한 조치를 촉구하는 공문을 보냈습니다. 이후 대피를 권유받았고, 피고 회사의 작업장을 이탈하며 당시 작업 중이던 P노동조합 소속 조합원 28명에게도 대피하라고 말하여 총 28명의 조합원이 작업을 중단하고 이탈했습니다. 회사는 이 행위에 대해 A에게 징계를 내렸고, A는 이 징계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근로자에게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는지 여부와 이에 따른 작업중지권 행사가 정당한지, 그리고 작업중지권 행사를 이유로 한 징계 처분이 무효인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전고등법원으로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요건과 산업재해 발생의 급박한 위험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유해 화학물질의 누출 범위 예측의 어려움, 실제 피해자 발생, 원고가 노동조합 대표로서 대피 권유 발언을 토대로 한 상황 인식을 고려할 때, 피고 회사의 작업장이 안전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원고에게 합리적인 근거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 보호를 위한 중요한 권리임을 재확인하며, '급박한 위험' 판단 시 근로자의 합리적인 인식을 폭넓게 인정해야 함을 시사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유해물질 누출과 같은 비상 상황에서 근로자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보호의 범위를 확대하는 중요한 선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