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금전문제
마스크 제조 회사인 원고가 필터 원자재 공급 회사인 피고와 장기 필터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지급했습니다. 이후 시장 상황 변화로 필터 가격이 급락하자 원고는 피고에게 물품대금 조정을 요청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원고는 피고가 계약상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를 불이행하고 필터 공급 의무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계약 해지와 보증금 반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계약서상 피고에게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가 없으며 필터 공급 의무도 위반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원고의 계약 위반 시 보증금이 피고에게 귀속된다는 손해배상 예정액 조항도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볼 수 없어, 원고의 모든 청구를 기각한 사례입니다.
원고 주식회사 A는 2020년 3월 25일 피고 주식회사 B와 필터 공급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내용은 2020년 1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24개월간 매월 필터 10톤(±10% 이내)을 공급받고, 물품대금은 킬로그램당 20,000원으로 하며, 물품대금 보증을 위해 12억 원을 선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원고는 계약에 따라 2020년 4월 10일부터 2020년 10월 12일까지 총 4차례에 걸쳐 보증금 12억 원을 피고에게 지급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초과 공급으로 수요가 감소하고 필터 시장 가격이 하락하자, 원고는 2021년 8월 30일부터 수차례 피고에게 필터 가격 조정을 요청했습니다. 피고는 매월 2톤 물량 인수와 보증금 정산, 또는 물품대금을 킬로그램당 12,000원으로 변경, 혹은 향후 5년간 시장가격으로 매입하고 보증금에서 차감하는 등 여러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원고는 피고가 필터 가격 조정 요청에 대한 시정을 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며, 2022년 4월 6일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보증금 12억 원의 반환 및 손해배상금 7억 477만 원의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원고는 특히 피고가 2020년 12월부터 2021년 3월까지 필터 40톤을 공급할 의무를 위반하여 이 기간 동안 원고가 다른 회사로부터 필터 22,380.75kg을 공급받은 것을 제외한 미공급 물량에 대한 손해배상을 주장했습니다. 반면 피고는 자신이 공급 의무를 이행했으며, 오히려 원고가 약정 물량을 인수하지 않아 계약을 위반하고 부적법하게 해지했다고 주장하며, 계약에 따라 보증금이 피고에게 귀속되었다고 맞섰습니다.
피고에게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가 있는지, 피고가 필터 공급 의무를 위반했는지, 그리고 원고의 계약 위반 시 피고에게 귀속되는 보증금 12억 원이 손해배상 예정액으로서 과도하여 감액되어야 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한다.
법원은 계약서의 문언상 물가변동 등 부득이한 사정 시 양 당사자의 합의로 물품대금을 조정할 수 있다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 피고에게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를 부과하거나 합의 불성립 시 책임에 대한 규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계약 체결 당시 마스크 및 필터의 공급이 수요에 크게 못 미치던 시장 상황에서 원고는 안정적인 물량 확보를, 피고는 안정적인 수익을 목적으로 계약을 체결한 점도 고려되었습니다. 또한, 피고가 필터 공급 의무를 위반했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가 물량 인수 조정을 제안했고 원고가 피고의 공급 의무 위반을 주장하거나 추가 공급을 요청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으며, 피고가 요청 물량 이상의 필터를 생산·보관했음을 근거로 기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약 해지에 원고의 귀책사유가 인정될 경우 잔존 보증금이 손해배상금으로 피고에게 귀속된다는 조항에 대해, 보증금 12억 원이 민법 제398조 제2항에 따른 손해배상 예정액 감액 대상인지는 검토했으나, 원고가 계약된 총 물량의 1/20 수준만 인수한 점, 피고 측의 예상 영업이익이 보증금보다 큰 점, 원고가 이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필터 물량을 확보하는 이익을 얻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감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원고의 모든 청구가 이유 없어 기각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주로 계약 해석의 원칙과 민법 제398조 제2항(손해배상액의 예정)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1. 계약 해석의 원칙 법원은 계약 당사자 간에 작성된 처분문서(계약서 등)의 문언이 객관적으로 명확하다면 그 문언대로 의사표시의 존재와 내용을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문언의 객관적인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계약이 이루어진 동기, 경위, 당사자가 달성하려는 목적과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사회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맞게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필터 공급 계약서에 물가변동 등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합의로 대금을 조정할 수 있다'고만 되어 있을 뿐,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나 합의 불성립 시 책임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불명확성을 계약 해석의 원칙에 따라 판단하여, 피고에게 물품대금 변경 합의 의무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2. 민법 제398조 제2항 (손해배상액의 예정) 민법 제398조 제2항은 '손해배상의 예정액이 부당히 과다한 경우에는 법원이 이를 적당히 감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당히 과다한 경우'란 채권자와 채무자의 지위, 계약의 목적 및 내용,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동기, 채무액에 대한 예정액의 비율, 예상되는 손해액의 크기, 그 당시의 거래 관행 등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일반 사회관념에 비추어 그 예정액의 지급이 경제적 약자의 지위에 있는 채무자에게 부당한 압박을 가하여 공정성을 잃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인정되는 경우를 뜻합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가 계약을 위반하여 물량을 인수하지 않을 경우 보증금 12억 원이 피고에게 귀속된다는 조항은 손해배상 예정액에 해당합니다. 법원은 이 보증금이 감액 대상인지 검토했으나, 원고가 총 약정 물량의 극히 일부만 인수했고 피고 측이 계약 이행 시 얻을 수 있었던 영업이익이 보증금보다 크며, 원고가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필터 물량 확보라는 이익을 얻었음을 고려하여, 예정액이 부당하게 과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감액하지 않았습니다.
계약서를 작성할 때는 예상치 못한 시장 변화나 외부 요인(예: 물가 변동, 팬데믹 등)으로 인한 상황 변화에 대비하여 물품대금 조정, 공급 물량 변경, 계약 해지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합의로 조정할 수 있다'는 문구만으로는 상대방에게 특정한 의무를 부과하기 어렵습니다. 계약 당사자 중 한쪽이 계약 내용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계약 위반 사유가 발생했다고 판단될 경우, 서면(내용증명 등)으로 명확하게 그 위반 사실을 적시하고 시정을 요구해야 합니다. 이때 단순히 협의를 요청하는 것을 넘어 구체적인 계약 조항 위반임을 명시하고, 그에 따른 조치(예: 계약 해지, 손해배상 청구)를 통보하는 것이 법적 분쟁 시 중요한 증거가 됩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 오고 간 모든 서류(계약서, 공문, 이메일, 물품 공급/인수 기록 등), 생산 및 재고 관련 자료 등을 철저히 보관해야 합니다. 이러한 자료들은 분쟁 발생 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됩니다.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두는 '손해배상 예정액' 조항은 계약 위반 시 손해를 쉽게 확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그 금액이 실제 발생할 수 있는 손해에 비해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인정될 경우 법원에 의해 감액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정액을 설정할 때는 계약의 목적, 당사자의 지위, 예상되는 손해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