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강제추행 · 기타 성범죄
피고인 A는 술자리에서 만취하여 잠이 든 피해자 D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1심 법원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거나 피고인이 이를 인식하고 간음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보아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검사는 이에 항소했지만 항소법원 또한 1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확정했습니다.
피고인 A와 피해자 D를 포함한 지인 10여 명은 2021년 4월 3일 밤 서울 강남구의 주점에서 1차 술자리를 가진 후 종로구의 한 주거지로 자리를 옮겨 2차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피해자 D는 이 자리에서 술에 만취하여 옆에 앉아 있던 지인 B에게 머리를 기대고 졸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지인들이 피해자를 방에 눕히고 나온 후, 피고인 A는 피해자가 잠든 틈을 타 스타킹과 팬티를 벗기고 성관계를 가졌습니다. 이후 피해자는 피고인 A가 자신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했다며 고소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만취한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였는지 여부 그리고 피고인이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임을 인지하고 이를 이용하여 성관계를 가졌는지 여부였습니다. 이는 준강간죄 성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항소법원은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피고인에 대한 원심의 무죄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항소법원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인식하면서 이를 이용하여 성관계에 나아갔다고 인정하기에는 제출된 증거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직후 피고인을 고소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성폭력 상담센터 문서에도 피고인과의 성관계를 '자의에 의한 성관계'로 기재한 점, 목격자가 피해자가 완전히 잠들지 않고 의식이 일부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종합하여 1심의 무죄 판단이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
준강간죄와 항거불능 상태: 형법상 준강간죄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경우에 성립합니다. 여기서 '심신상실'은 술에 만취하여 의식을 잃거나 정신 기능에 문제가 있는 상태를, '항거불능'은 폭행이나 협박 없이도 저항하는 것이 현저히 곤란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본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술에 만취하여 방에 눕혀졌으나, 1심과 2심 법원은 피해자가 단순히 만취 상태를 넘어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는 점, 그리고 피고인이 그러한 상태를 인식하고 이용했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죄 추정의 원칙: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러한 확신에 이르지 못할 경우, 설령 유죄의 의심이 들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 본 사건에서도 항소법원은 검사의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준강간 혐의를 입증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아 무죄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항소심의 역할 (사후심적 속심): 항소심은 1심 법원의 판결이 적절했는지 다시 판단하지만, 1심에서 직접 증인을 심문하고 증거를 조사한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존중합니다. 따라서 항소심에서 1심의 증인 진술 신빙성 판단을 뒤집으려면 명백한 잘못이 있거나 현저히 부당하다고 인정될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합니다. 본 사건에서 항소법원은 1심의 증거판단과 사실인정이 비합리적이거나 경험칙에 어긋난다고 보지 않았으며,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으므로 1심의 무죄 판결을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의 성관계는 그 동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본 사건의 경우처럼 피해자가 사건 직후 수사기관이나 상담센터에서 진술하거나 작성한 문서의 내용이 범행 내용과 일치하지 않거나 번복되는 경우, 법원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피해자가 성관계 당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명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주변인의 진술이나 사건 직후의 행동들이 피해자의 주장을 뒷받침하지 못하면 유죄를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성관계 당사자들 사이의 평소 관계나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들이 일관되고 객관적인 증거들과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며, 이는 법적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술에 취한 상대방과의 성관계는 추후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경우 당사자 모두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므로 항상 신중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