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권/채무
주식회사 진주상호저축은행이 한국주택에 대한 대출금의 연대보증인인 피고 회사를 상대로 대여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 회사는 연대보증채무의 유효성 자체를 다투고 소멸시효 항변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1심 판결 후 항소심 진행 중, 피고 회사의 상무이사가 원고 은행 직원들과 만나 채무액 482,560,439원 중 2억 원을 지급하고 사건을 종결하자는 합의안을 제안했습니다. 원심은 이 제안을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채무에 대한 승인으로 보고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로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원고 은행은 주채무자 한국주택에 대출을 해주었고, 피고 회사는 이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을 섰습니다. 대출금의 최종 변제일은 1998년 12월 30일이었으나, 피고 회사에 대한 연대보증채무의 상사시효 5년이 지난 2004년 6월 23일에야 원고 은행이 피고 회사 소유 차량에 가압류를 집행하고, 2005년 2월 24일에는 지급명령을 신청했습니다. 피고 회사는 처음부터 연대보증채무 자체가 무효이거나 취소되었다고 주장했으며, 1심 진행 중 2006년 11월 6일 준비서면에서 원고의 장기간 무조치를 지적했고, 1심 변론 종결 후인 2007년 2월 16일에는 정식으로 소멸시효 항변을 제기했습니다. 심지어 1심 판결 직전인 2007년 2월 16일에는 원고 은행 대표이사 등을 연대보증란 위·변조 혐의로 고소하기까지 했습니다. 1심에서 원고가 승소하자 피고는 항소했고, 항소심 진행 중에도 채무 부존재와 소멸시효 항변을 계속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고 회사의 상무이사인 소외 2가 원고 은행에 2억 원을 지급하고 사건을 종결하자는 합의안을 제안했지만, 원고는 이를 거절하고 전액 상환을 요구하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연대보증채무에 대해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일부 금액을 지급하고 소송을 종결하자는 합의안을 제시한 행위가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로 볼 수 있는 채무의 승인에 해당하는지 여부입니다.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채무자의 합의안 제안이 소멸시효 이익 포기로 볼 수 있는 채무 승인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와 관련한 의사표시의 해석을 그르쳐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단순히 합의 제안만으로 단정해서는 안 되며, 채무자가 채무의 존재 자체를 일관되게 다투고 합의 제안의 경위, 동기, 진정한 의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상대방이 합의 제안을 거절하여 구체적인 논의에 이르지도 못한 상황에서는 이를 확정적인 채무 승인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합의를 시도한 복합적인 상황을 폭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소멸시효: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상사채권은 일반적으로 5년, 민사채권은 10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 그 권리가 소멸되는 제도입니다(민법 제162조, 상법 제64조 등). 이 사건에서는 상사채무로서 5년의 소멸시효 기간이 적용되었습니다. 원고 은행의 연대보증채무 청구는 최종 변제일인 1998년 12월 30일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에 제기되었으므로, 피고는 소멸시효 완성으로 채무가 소멸했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되는 법적 이익을 얻습니다. 채무자가 이 이익을 포기하면 시효 완성의 효과가 없어지고 다시 채무를 갚아야 합니다. 포기는 시효 완성 후에만 가능하며, 반드시 명시적일 필요는 없고 묵시적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묵시적 포기 중 가장 흔한 형태가 바로 '채무 승인'입니다. 채무의 승인: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해 자신이 부담하는 채무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는 소멸시효 중단 사유가 되기도 하지만, 이 사건처럼 소멸시효가 이미 완성된 후에는 시효 이익의 포기 사유로 작용합니다. 그러나 채무 승인으로 인정되려면 단순한 협상 제안이 아니라 채무의 존재를 확정적으로 인정하려는 의사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고가 일관되게 채무 자체를 다투고, 소멸시효 항변을 강력히 주장해왔던 점, 합의 제안이 불발된 점 등을 고려할 때 2억 원 합의안 제시만으로 채무의 확정적 승인 및 소멸시효 이익 포기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채무의 존재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소송 외적으로 합의를 시도할 때는 그 목적과 진정한 의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분쟁 해결이나 가압류 해제와 같은 부수적인 목적을 위한 합의 제안은 소멸시효 이익 포기로 해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무에 대한 합의 제안이라 할지라도, 제안의 내용, 상대방의 반응, 제안 전후의 채무자의 일관된 주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채무 승인 여부를 판단합니다. 상대방이 합의 제안을 거절하고 합의가 불발된 경우라면 채무 승인으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채무자가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고, 채무의 원인 관계 자체를 부인하는 등의 강력한 다툼이 있었다면, 단순히 협상 과정에서 나온 일정 금액 제안만으로는 소멸시효 이익을 포기한 것으로 쉽게 보지 않습니다. 소멸시효 항변은 중요한 법적 방어 수단이므로, 이 항변을 포기하는 의사표시는 매우 명확하고 확정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묵시적인 포기도 가능하지만, 그 해석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