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
한국전력공사가 충북 진천군 일대에 전신주를 설치하기 위해 도로점용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진천군수는 허가를 내주면서 ‘향후 도로 확·포장 공사, 유지보수 공사, 국가계획 또는 공익상 필요할 경우 한국전력공사의 부담으로 전신주를 철거하거나 이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 조건이 무효이거나 취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은 이 조건이 적법하다고 판단하여 한국전력공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일대 도로에 전력공급용 전신주 5개를 설치하기 위해 진천군수에게 도로점용허가를 신청했습니다. 진천군수는 2019년 7월 16일 한국전력공사에 도로점용허가를 내주면서 ‘향후 도로 확·포장 공사, 유지보수 공사, 국가계획 또는 공익상(도로의 확·포장 공사에 편입 등) 필요하여 허가가 취소되거나 이전이 필요한 때에는 피허가자 부담으로 도로를 원상복구하거나 이전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조건을 붙였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 조건이 도로법이나 전기사업법의 비용 부담 규정에 위배되고, 헌법상 사유재산 존중의 원리나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나 위법하다고 주장하며 이 조건의 무효확인 또는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도로점용허가에 붙은 조건(부관)이 독립적으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여부. 둘째, 해당 조건이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어 위법한지 여부. 특히, 도로법이나 전기사업법에서 정한 비용 부담 규정에도 불구하고 공익적 필요에 따른 철거 또는 이전 비용을 한국전력공사에 부담시키는 것이 적법한지가 핵심이었습니다.
법원은 원고 한국전력공사의 주위적 청구(부관 무효 확인) 및 예비적 청구(부관 취소)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이에 따라 도로점용허가 시 진천군수가 부과한 조건은 유효하다고 판결되었습니다.
법원은 도로점용허가에 붙은 조건이 행정행위의 부관 중 ‘부담’에 해당하여 독립적으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해당 조건은 한국전력공사가 공공재산인 도로를 특별히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장래의 불필요한 도로 관리 비용 지출을 막으려는 공익적 목적과 충분히 관련이 있으며, 공익적 필요에 따라 허가가 취소되거나 이전이 필요할 때로 그 부담의 범위를 한정하고 있으므로 부당결부금지의 원칙이나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진천군수의 조건 부과 행위는 적법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은 행정법상 중요한 원칙들과 법령이 적용되었습니다.
1. 행정행위의 부관과 독립적 쟁송 대상 여부 (대법원 1992. 1. 21. 선고 91누1264 판결) 행정행위에 부가되는 조건(부관)은 원칙적으로 그 행정행위의 주된 내용에 종속되어 독립적인 소송 대상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상대방에게 일정한 의무를 부과하는 '부담'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독립적인 소송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진천군수가 한국전력공사에 부과한 '비용 부담 의무'를 부담으로 보아 독립적으로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2. 부당결부금지의 원칙 (대법원 2009. 2. 12. 선고 2005다65500 판결, 2009. 12. 10. 선고 2007다63966 판결) 행정기관이 행정처분을 할 때 상대방에게 그 처분과 실질적인 관련이 없는 의무를 부과하거나 그 이행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이 사건에서 한국전력공사는 전신주 철거 및 이전 비용 부담 조건이 도로점용허가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한국전력공사가 공공의 재산인 도로를 특별히 사용하는 데서 발생하는 '장래의 불필요한 도로 관리 비용 지출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이 점용허가와 충분히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3. 비례의 원칙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7다63966 판결) 행정기관이 행정작용을 할 때,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만을 해야 하며, 그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이 달성되는 공익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이 조건이 '공익적 필요'로 인해 허가가 취소되거나 이전이 필요할 때로 비용 부담 경우를 한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도로법 제91조나 전기사업법 제72조와 같이 제3의 원인자가 있는 경우의 비용 부담 관계를 배제하는 취지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이 조건이 비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4. 도로법 제85조, 제91조 도로법은 도로에 관한 비용은 원칙적으로 국가나 도로관리청이 부담하지만, 다른 공사나 행위(타공사 등)로 인해 도로 공사를 시행하게 된 경우 그 원인자에게 도로 공사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시킬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전력공사는 이 규정을 들어 자신이 항상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 조건이 도로의 특별 사용으로 인한 '장래의 불필요한 도로 관리 비용 지출 방지'라는 공익적 목적을 위한 것이며, 도로법 규정의 적용을 배제하는 취지는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5. 전기사업법 제72조 전기사업법은 전기사업용 전기설비가 다른 자가 설치하려는 지상물 등으로 인해 기술기준에 적합하지 않게 될 우려가 있는 경우, 그 지상물 등을 설치하려는 자가 비용을 부담하여 필요한 조치를 하거나 전기사업자에게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 또한 다른 원인자가 있는 경우의 비용 부담을 규정한 것이며, 이 사건 조건이 이 규정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라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공공 시설물 설치를 위해 도로점용허가와 같은 수익적 행정처분을 받을 때에는 행정기관이 특정 조건을 부과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건이 장래의 공사나 공익적 필요에 따라 발생하는 비용 부담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일 경우, 이는 해당 허가로 인한 공공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목적과 관련성이 인정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공공의 재산인 도로의 특별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비용을 사용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조건을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허가 신청 시 부과될 수 있는 조건과 그에 따른 의무 사항을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비용 부담과 관련된 조항은 관련 법령과 더불어 면밀히 분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