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도주
새벽 시간대에 신호를 위반하여 교차로에 진입한 오토바이 운전자가 직진 신호를 준수하며 교차로를 통과하던 차량과 충돌하여 사망한 사고입니다. 오토바이 운전자의 유족들은 신호를 준수한 차량의 운전자에게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며 보험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기각했습니다.
2023년 10월 18일 새벽 1시 31분경, 망인 H이 오토바이를 운전하여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에 직진하던 중 직진 신호에 따라 교차로를 통과하던 I이 운전하는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망인 H은 사망했고, 망인의 배우자와 자녀들은 피고 차량 운전자가 전방 주시 의무를 소홀히 하는 등 30%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원고들은 피고에게 원고 A에게 43,075,594원, 원고 B, C에게 각 26,883,729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요구했습니다.
신호에 따라 교차로를 진행하던 차량의 운전자에게 신호를 위반하고 진입하는 다른 차량으로 인한 사고를 예방할 주의의무가 있는지 여부 및 그 범위.
원고들의 피고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들이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신호를 준수하여 진행하는 차량의 운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차량도 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이라고 믿고 운전하면 충분하며 신호를 위반하여 교차로에 새로 진입하는 차량까지 예상하여 사고 방지 조치를 강구할 주의의무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사고 발생 시각, 피고 차량 운전자가 오토바이를 식별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망인이 정지 신호로 바뀐 후 교차로에 진입한 점 등을 종합하여 피고 차량 운전자에게 과실이 없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본 판례에서는 대법원 2005. 5. 13. 선고 2005다7177 판결의 법리가 인용되었습니다. 이는 '신호등에 의하여 교통정리가 행하여지고 있는 교차로를 진행신호에 따라 진행하는 차량의 운전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차량들도 교통법규를 준수하고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믿고 운전하면 충분하고, 다른 차량이 신호를 위반하고 자신의 진로를 가로질러 진행하여 오거나 자신의 차량을 들이받을 경우까지 예상하여 그에 따른 사고발생을 미리 방지할 특별한 조치까지 강구할 주의의무는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했습니다. 다만, '신호를 준수하여 진행하는 차량의 운전자라도 이미 교차로에 진입하고 있는 다른 차량이 있다거나 그 진행방향의 신호가 진행신호에서 정지신호로 바뀐 직후에 교차로를 진입하여 계속 진행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거나 또는 그 밖에 신호를 위반하여 교차로를 진입할 것이 예상되는 특별한 경우라면 그러한 차량의 동태를 두루 살피면서 서행하는 등으로 사고를 방지할 태세를 갖추고 운전하여야 할 주의의무는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망인이 정지 신호로 바뀐 후에 교차로에 새로 진입한 것으로 보아, 피고 차량 운전자에게는 그러한 주의의무가 없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의해 교통정리가 이루어지는 경우, 진행 신호에 따라 운전하는 운전자는 다른 차량들도 신호를 준수할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호를 위반하여 교차로에 진입하는 차량까지 예상하여 사고를 미리 방지할 특별한 조치를 취할 의무는 일반적으로 없습니다. 다만, 이미 교차로에 다른 차량이 진입해 있거나 신호가 바뀐 직후 진입하여 계속 진행하는 차량을 발견하는 등 특별한 상황에서는 서행하여 사고를 방지할 태세를 갖출 주의의무가 있습니다. 본 사례는 신호가 바뀐 후에 뒤늦게 신호를 위반하여 진입한 차량과의 사고에서는 신호를 준수한 운전자에게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