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설계 용역 계약 불발에 따른 손해배상 사건

건축설계 및 감리업을 영위하는 원고 회사가 피고 회사들과 공동주택 설계 용역 계약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피고 C 회사가 피고 B 회사를 통해 설계안 제출 요청, 현장 답사, 관할 관청 협의 등 적극적인 계약 이행 준비를 요구하고 킥오프 미팅까지 진행하며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신뢰를 주었음에도, 결국 계약 체결을 거부하고 다른 회사와 계약을 맺은 사안입니다. 법원은 피고 C 회사가 계약 교섭을 부당하게 파기하여 원고 회사에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여, 원고 회사가 계약 체결을 기대하고 이행을 위해 지출한 비용의 일부인 1억 1천 5백여만 원을 지급하도록 판결했습니다. 피고 B 회사에 대한 청구와 피고 C 회사에 대한 다른 청구들(상법상 보수 청구, 계약 위반에 따른 보수 및 손해배상, 계약 체결 의무 위반 손해배상)은 기각되었습니다.

관련 당사자

• 원고 주식회사 A: 건축설계 및 감리업을 하는 회사로, 피고 C의 공동주택사업 기획·설계 업무를 논의하고 수행했습니다.
• 피고 B 주식회사: 경영자문 및 자회사 출자 목적의 회사로, 피고 C를 대행하여 원고와 설계 용역 계약 교섭을 진행했습니다.
• 피고 C 주식회사: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회사이자 이 사건 공동주택 사업의 시행자로, 원고와 설계 용역 계약을 교섭한 실제 당사자입니다.

분쟁 상황

원고 회사는 피고 B 회사의 제안으로 피고 C 회사의 공동주택사업 기획·설계 업무를 검토했습니다. 원고는 피고 B에게 기획·설계안을 제출하고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으며, 피고 B는 원고에게 견적 제안을 요청하고 용역계약서 초안 및 과업지시서를 송부했습니다. 이후 원고는 피고 B의 요청에 따라 작업 도면, 배치 대안, 주차장 계획안 등을 제출하고, 청주시청 담당자와 협의, 현장 답사, 피고 C 임원과의 킥오프 미팅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피고 B는 갑자기 계약서에 날인하기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최종적으로 피고 B와 C는 원고와의 계약 체결을 거부하고 다른 회사와 설계 용역 계약을 맺었습니다. 이에 원고는 자신이 수행한 업무에 대한 보수나 계약 불발로 인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핵심 쟁점

원고와 피고들 사이에 이 사건 공동주택사업에 관한 설계 용역 계약이 성립되었는지 여부, 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상법 제61조에 따른 보수 청구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 피고 B와 피고 C 중 누가 원고와 설계 용역 계약 체결을 교섭한 실질적인 당사자인지 여부, 피고들이 원고에게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신뢰를 부여하고 계약 교섭을 부당하게 파기했는지 여부 및 그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과 범위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의 판단

1. 피고 B 주식회사에 대한 원고의 주위적 청구 및 제1~3 예비적 청구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법원은 원고와 설계 용역 계약 체결을 교섭한 실제 당사자는 피고 C이며, 피고 B는 피고 C를 대행했을 뿐이므로 피고 B에게는 법률상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2. 피고 C 주식회사에 대한 원고의 주위적 청구(상법 제61조에 따른 보수 청구)와 제1, 2 예비적 청구(설계 용역 계약에 따른 보수 청구 및 해지 손해배상, 계약 체결 의무 위반 손해배상)는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법원은 원고와 피고 C 사이에 설계 용역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상법 제61조 적용을 배제하는 묵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았으며, 원고가 낙찰자 또는 우선협상대상자와 유사한 지위에 있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3. 피고 C 주식회사에 대한 원고의 제3 예비적 청구(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는 일부 인용되었습니다. 피고 C는 원고에게 115,380,000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2022. 4. 22.부터 2023. 10. 11.까지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을 지급해야 합니다.
4. 소송비용은 원고와 피고 B 주식회사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가 전액 부담하고, 원고와 피고 C 주식회사 사이에 생긴 부분은 원고가 80%, 피고 C 주식회사가 20%를 부담합니다.

결론

법원은 피고 B 주식회사는 이 사건 계약 교섭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라고 보았으며, 원고와 피고 C 주식회사 사이에는 설계 용역 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피고 C 주식회사가 원고에게 계약 체결에 대한 정당한 기대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업무를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은 신의성실 원칙에 위배되는 부당한 계약 교섭 파기로 보아, 원고가 계약 체결을 믿고 지출한 비용의 일부를 손해배상액으로 인정했습니다.

연관 법령 및 법리

1. 상법 제61조 (상인의 보수청구권)​: 상인이 그 영업 범위 내에서 타인을 위하여 행위를 한 때에는 상법 제61조에 따라 그 행위에 대하여 상당한 보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이는 상거래의 통념상 상인이 영리를 목적으로 노력한 것에 대해 이익을 얻은 사람이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 C가 설계 용역 계약 체결을 교섭하면서 원고가 계약 이행을 준비하는 행위를 한 것이므로, 양 당사자 사이에 상법 제61조의 적용을 배제하는 묵시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아 보수 청구가 기각되었습니다.
2. 계약의 성립 요건: 계약이 성립하려면 당사자 사이에 그 본질적이거나 중요한 사항에 관하여 구체적인 의사의 합치가 있거나, 적어도 장래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 있는 기준과 방법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와 피고 C 사이에 도급인, 대금, 용역 범위 등이 다른 계약서 초안이 오갔고, 서명 날인이라는 계약 성립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으며, 당사자에 대한 합의도 불분명하여 계약이 성립되었다고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3.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 어느 일방이 계약 교섭 단계에서 계약이 확실히 체결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나 신뢰를 상대방에게 부여하고, 상대방이 그 신뢰에 따라 행동하여 손해를 입었음에도, 상당한 이유 없이 계약 체결을 거부하는 행위는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는 위법한 행위로 보아 불법행위를 구성합니다. 이 경우 상대방은 계약 체결을 신뢰하여 입은 손해(신뢰 이익 손해)를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계약 교섭의 부당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은 계약 체결을 신뢰한 상대방이 입게 된 상당 인과관계 있는 손해에 한정됩니다. 일반적으로는 계약의 이행을 위해 지출한 비용이 포함되지만, 아직 계약 체결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부여되기 이전에 지출한 비용은 손해배상 범위에서 제외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행 착수가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른 것이라면 그 비용은 손해배상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참고 사항

1. 계약 당사자 명확화: 프로젝트 진행 전 계약의 주체와 당사자를 명확히 확인하고 문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건에서는 피고 B가 피고 C를 대행했다고 주장했지만, 원고는 피고 B를 직접 계약 당사자로 오인하여 청구하는 혼선이 있었습니다.
2. 계약서 작성의 중요성: 정식 계약서에 서명 날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업무를 진행할 경우 법적 분쟁의 소지가 큽니다. 계약의 본질적이고 중요한 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가급적 신속하게 계약서를 작성하고 상호 서명 날인하여 효력을 발생시키는 것이 안전합니다.
3. 계약 체결 전 준비 업무의 범위: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청에 따라 계약 체결 이전에 준비성 업무나 이행성 업무를 수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해당 업무가 단순한 수주 활동을 넘어 상대방의 이익을 위한 실질적인 용역 업무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업무 내용과 진행 과정에 대한 증거(요청 자료, 회의록, 결과물, 지출 비용 등)를 철저히 기록하고 보관해야 합니다. 이 경우 법원은 계약 체결의 정당한 신뢰가 있었고 상대방의 적극적인 요구에 따라 지출한 비용은 손해배상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4. 계약 교섭 파기의 정당한 이유 유무: 계약 교섭 중단 시에는 상대방에게 납득할 만한 정당한 이유를 제시해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계약 체결에 대한 강한 신뢰를 주었음에도 특별한 이유 없이 일방적으로 교섭을 중단하면, 신의성실 원칙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의 설계안에 특별한 하자가 없었음에도 계약을 거부한 것이 부당한 파기로 인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