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도/재물손괴
아파트 입주민 대표 회장이 자신에 대한 허위 사실을 담은 현수막을 임의로 제거하여 재물손괴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법원은 해당 행위가 명예 등 인격적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정당행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피고인 A는 아파트 입주민 대표 회장이고, 피해자 C는 아파트 감사입니다. C는 A가 아파트 관리비를 부당하게 사용했다는 문제 제기를 했고,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C는 'A가 아파트 관리비를 유흥주점 등에서 임의사용하여 횡령하였다'는 내용의 현수막(가로 250센티미터, 세로 250센티미터, 시가 7만 7,000원 상당)을 아파트 생활지원센터 외부 창문에 게시했습니다. 이에 A는 2020년 9월 24일 22시경, 현수막 제거를 위한 민사소송 등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현수막을 제거하였고, 이로 인해 C 소유의 현수막을 손괴했다는 혐의로 재물손괴죄로 기소되었습니다.
명예훼손 내용의 현수막을 임의로 제거한 행위가 재물손괴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만약 해당한다면 그 행위가 정당행위 또는 정당방위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피고인은 무죄.
법원은 피고인이 현수막을 철거한 행위가 자기의 명예 등 인격적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다고 보아, 형법 제20조 제1항에 따른 정당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형법 제20조 (정당행위):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현수막 철거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현수막 내용이 허위일 가능성이 높고 외부인에게도 노출되어 피고인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상황에서, 현수막의 가액(7만 7,000원)이 명예훼손 피해에 비해 미미하며, 민사 소송 등의 법적 절차는 시간이 오래 걸려 피해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피고인의 행위가 정당하다고 본 것입니다.
형법 제21조 (정당방위):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피고인 측은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당행위를 인정했으므로 정당방위에 대해서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현수막 철거 행위를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서 상당성이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본 것은 정당방위의 법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정당방위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막기 위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행위'여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현수막으로 인한 명예훼손은 '현재 진행 중인 침해'로 볼 수 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325조 (무죄판결): 피고사건이 범죄로 되지 아니하거나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는 때에는 판결로 무죄를 선고하여야 한다. 법원이 피고인의 현수막 철거 행위에 대해 형법 제2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으므로, 이는 '범죄로 되지 아니하는 때'에 해당하여 무죄를 선고한 근거가 됩니다.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참조 (정당방위의 상당성 판단 기준): 정당방위 행위가 사회적으로 상당한 것인지 여부는 침해행위에 의해 침해되는 법익의 종류, 정도, 침해의 방법, 침해행위의 완급과 방위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의 종류, 정도 등 일체의 구체적 사정들을 참작하여 판단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라 피고인의 행위가 상당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타인이 공공장소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여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경우, 명예훼손의 내용이 진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명확히 없고, 피해자의 명예훼손 정도가 매우 크며 그 상태가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해당 현수막 등 손괴되는 재물의 가액이 명예훼손의 피해에 비해 현저히 낮고, 민사소송 등 법적 절차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어 피해가 계속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명예를 훼손하는 재물을 직접 제거하는 행위가 정당행위로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이는 침해되는 법익과 방위 행위에 의해 침해될 법익 간의 균형, 그리고 침해의 긴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판단이므로 모든 경우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며, 본 사건에서는 현수막의 내용이 허위이고 외부인에게도 노출되어 명예훼손의 정도가 컸으며 현수막 가액은 7만 7,000원에 불과하다는 점 등이 중요하게 작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