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폭행/강제추행
피고인 A가 피해자 E와 B과 함께 술을 마신 후 피해자 E가 잠이 들자, B이 샤워하러 간 틈을 타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몸을 만져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입니다. 원심은 피해자가 완전히 잠들지 않았거나 피고인의 행동에 반응했을 가능성 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술에 취해 잠들었음을 인정하고, '알코올 블랙아웃' 가능성, 저항력 상실, 피고인 주장의 모순 등을 지적하며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도록 환송했습니다.
2018년 1월 5일, 피고인 A는 자신의 집 작은방에서 피해자 E, B과 함께 소주 3병과 맥주 6병 정도의 술을 마셨습니다. 피해자 E가 피곤하여 잠을 자겠다고 하자 피고인과 B은 방에서 나왔고, B이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간 사이 피고인 A는 피해자가 잠들어 있는 작은방으로 두 번 들어갔습니다. 이후 B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던 중 피고인이 피해자 방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했고, 방 안으로 들어가 불을 켜보니 피해자의 바지와 팬티가 벗겨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B이 피해자를 깨워 '왜 옷을 벗고 있냐?'고 묻자 피해자는 '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라고 답했습니다. 피해자는 이 사건 이후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잠든 자신을 만진 사실을 알지 못하였다고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술에 취해 잠든 피해자가 준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그리고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하려는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입니다. 원심은 피해자가 완전히 잠들지 않았을 가능성, 만취 상태에서 피고인의 행동에 반응했을 가능성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했으나, 대법원은 피해자의 기억 상실이 '알코올 블랙아웃'이나 만취 상태로 인한 것일 가능성, 피고인의 주장이 객관적 상황과 모순되는 점 등을 지적하며 원심의 판단을 뒤집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고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준강제추행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술에 취해 깊이 잠든 상태 역시 준강제추행죄에서 규정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할 수 있으며,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기억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다른 정황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한다면, 피고인의 고의를 부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판결로, 동의 없는 신체 접촉에 대한 엄격한 판단 기준을 제시합니다.
이 사건에 적용된 주요 법령은 형법 제299조(준강간, 준강제추행) 입니다.
형법 제299조는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 또는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의 취지는 정신적 또는 신체적 사정으로 인해 성적인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사람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심신상실'은 정신 기능의 장애로 인해 성적 행위에 대한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고, '항거불능'은 심신상실 외의 다른 원인으로 인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뜻합니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거나 술, 약물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완전히 의식을 잃지는 않았더라도 그와 같은 사유로 정상적인 판단능력과 대응 및 조절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다면 준강제추행죄에서 말하는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특히, 알코올의 영향으로 의사를 형성할 능력이나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상태도 '항거불능'에 포함됩니다(대법원 2021. 2. 4. 선고 2018도9781 판결 참조).
범죄의 '고의'는 피고인이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러한 상태를 이용하여 추행하겠다는 내심의 의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고의는 직접 증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물의 성질상 고의와 관련된 간접 사실이나 정황 사실을 통해 증명될 수 있습니다. 미필적 고의의 경우, 행위자가 범죄 사실의 발생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위험을 용인하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는지 여부를 행위자의 진술에 의존하지 않고, 외부로 드러난 행위의 형태와 상황 등 구체적인 사정을 기초로 판단합니다.
술에 취해 잠들었거나 의식이 불분명한 상태의 사람에게 신체 접촉을 시도하는 것은 상대방의 명확한 동의를 얻을 수 없으므로, 준강제추행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술 등으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나 저항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였다면, '항거불능' 상태로 인정되어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의 기억이 없거나 진술이 다소 불분명하더라도, 다른 객관적인 정황 증거와 일관된 주장이 있다면 그 신빙성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습니다. 특히 술을 마신 후 기억이 끊어지는 '알코올 블랙아웃' 현상으로 인해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의 주장이 구체적이고 일관된다 할지라도, 피해자의 진술이나 사건 발생 당시의 객관적인 상황과 모순될 경우 그 신빙성이 부정될 수 있습니다. 성적인 접촉은 항상 상대방의 명확하고 자발적인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동의 능력이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는 어떠한 신체 접촉도 삼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