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금전문제 · 노동
원고 회사는 하도급 계약에 따라 장비 제조 및 용역을 제공하던 중, 상위 도급업체인 C회사의 자금난으로 인해 피고 회사로부터 긴급 자금을 지원받는 내용의 합의를 하였습니다. 원고는 이 합의를 통해 피고가 C회사의 도급업체로서의 지위를 원고에게 이전했다고 주장하며 미지급된 장비 및 용역 대금 23억여 원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해당 합의가 긴급 자금 지원을 통해 계약 이행을 원활히 하려는 목적이었을 뿐, 원고가 C회사의 계약상 지위를 인수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피고는 중국 회사들과 밧데리 제조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한 후, 해당 장비 생산의 일부를 C회사에 도급 주었습니다. C회사는 다시 원고에게 이 장비 생산을 하도급 주면서 원고는 피고의 '하도급의 하도급' 업체가 되었습니다. C회사가 장비 생산 과정에서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원고와 C회사는 피고에게 자금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피고는 2017년 9월 27일 원고, 피고, C회사 간의 합의를 통해 원고에게 긴급 지원금 7억 5천만 원을 포함한 일부 자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피고는 중국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았고, C회사가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보아 C회사를 상대로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벌 10억 원 및 손실 비용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원고는 이 과정에서 피고와 맺은 합의가 C회사의 계약상 지위를 원고가 인수하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며, 피고가 원고에게 미지급된 장비 및 용역 대금 23억 1,540만 3,421원을 직접 지급해야 한다고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원고와 피고, C회사 사이에 체결된 긴급 자금 지원 합의가 원고가 C회사의 계약상 지위를 피고로부터 인수하는 '계약인수'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원고는 계약인수가 이루어졌으므로 피고에게 직접 대금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지만, 피고는 단순한 자금 지원이었을 뿐 계약인수는 없었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고 소송 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이는 원고가 피고로부터 직접 장비 및 용역 대금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본 것입니다.
재판부는 원고, 피고, C회사가 체결한 합의서는 C회사의 자금난으로 인한 계약 이행 차질을 막기 위해 피고가 원고와 C회사에 긴급 자금을 지원하고, 이들이 제품 검수 및 양산 대응 의무를 완수하도록 재차 확인하는 취지의 합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합의서 어디에도 원고가 C회사의 계약상 지위를 인수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고, 피고가 계약 불이행에 대해 C회사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원고가 C회사의 계약 지위를 인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직접적인 대금 청구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계약인수'와 '처분문서의 해석'에 관한 법리가 적용되었습니다.
첫째, '계약인수'란 기존 계약 당사자의 지위를 새로운 당사자가 포괄적으로 승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계약으로부터 발생하는 채권과 채무뿐만 아니라 해제권과 같은 포괄적인 권리 및 의무의 양도를 포함합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계약인수가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기존 계약의 당사자, 계약을 양도하는 자, 그리고 계약을 인수하는 자 세 당사자 모두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세 당사자 중 두 당사자의 합의가 먼저 이루어진 경우라도, 나머지 당사자가 이를 동의하거나 승낙해야만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원고, 피고, C회사의 합의가 원고가 C회사의 계약상 지위를 인수한다는 명시적인 내용이 없었기에 계약인수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둘째, '처분문서의 해석'에 대한 법리입니다. 처분문서(계약서, 합의서 등)는 그 문서가 진정하게 작성된 것으로 인정되는 한, 법원은 문서에 기재된 내용 그대로 당사자들의 의사표시와 그 내용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약 문서에 나타난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될 경우, 문서의 문언 내용, 약정이 이루어진 동기와 경위, 약정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들의 진정한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서의 문언과 체결 경위, 그리고 피고가 C회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합의가 계약인수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했습니다.
비슷한 문제 상황에 처하게 될 경우, 계약 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3자 간의 합의를 통해 기존 계약 관계에 변화(예: 계약 인수)가 발생한다고 기대한다면, 그 내용을 합의서에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금 지원이나 협력 관계 강화 차원의 합의는 계약 관계의 당사자를 변경하거나 대금 지급 의무를 이전시키는 것으로 해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합의서의 문언은 법적 효력을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므로, 모든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서면에 명확히 반영되도록 세심하게 작성해야 합니다. 또한, 합의 이후 각 당사자의 행동 역시 합의의 의도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므로, 일관성 있는 행동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