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류/처분/집행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원고)이 한 용역업체(피고)와 이주 관리 및 철거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했습니다. 그러나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로 조합 설립인가가 취소되면서 사업 진행이 불가능해졌고, 조합은 용역업체에 지급한 계약금의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조합은 계약 이행불능이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 또는 용역업체의 계약이행 보증보험증권 미제출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조합 설립인가 취소는 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른 것으로 조합 측의 책임 있는 사유에 해당하며, 계약금 반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원고인 A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2009년 8월 설립인가를 받고, 같은 해 12월 피고인 주식회사 B와 이주 관리, 철거 등 용역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금으로 총 3억 5천 6백여만원(부가가치세 포함)을 지급했습니다. 2012년 2월, 도시정비법에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로 조합 설립인가를 취소할 수 있는 규정(제16조의2)이 신설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2013년 10월, 원고 조합의 조합원 D은 245명의 조합원들로부터 해산 동의서를 받아 서구청에 조합 해산을 신청했습니다. 2013년 12월, 인천광역시 서구청장은 과반수 동의를 이유로 원고 조합에 대한 설립인가를 취소했으며, 이에 대한 원고의 취소 소송 또한 2014년 10월 기각되어 확정되었습니다. 이후 2018년 9월, 원고는 피고에게 계약이행 보증보험증권 미제출 및 사업 진행 불가능을 이유로 용역계약 해제를 통보하고, 이미 지급한 계약금 3억 5천 6백여만원의 반환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쟁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설립인가 취소가 계약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인지 아니면 채권자인 조합의 책임 있는 사유인지 여부입니다. 둘째, 계약 이행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이미 지급된 계약금을 반환받을 수 있는지 여부입니다. 셋째, 피고가 계약이행 보증보험증권을 제출하지 않은 것이 계약 해제 사유가 되는지 여부입니다.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
법원은 조합 설립인가 취소는 조합원 과반수의 의사 결정에 따른 것이므로, 이는 채권자인 원고 조합의 책임 있는 사유로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민법 제538조 제1항에 따라 용역업체인 피고가 반대급부(용역대금)를 청구할 수 있으며, 계약 이행불능으로 인한 위험은 원고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피고가 용역 계약 이행을 면함으로써 얻은 이익(비용 절감)이 원고에게 미지급 용역대금 외에 반환해야 할 만큼 크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하여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습니다. 계약 해제 주장에 대해서도, 피고의 보증보험증권 미제출은 원고가 적법하게 해제를 통보한 시점에 이미 사업 진행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므로 적법한 해제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에는 주로 민법상 위험부담에 관한 조항들이 적용되었습니다.
민법 제537조 (채무자위험부담주의): 쌍무계약에서 한쪽 당사자의 채무가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여기서는 용역업체)는 상대방(여기서는 조합)에게 자신의 채무 이행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원칙입니다. 원고 조합은 설립인가 취소가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라고 주장하며 이 조항에 따라 계약금 반환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조합 해산이 조합원 과반수의 의사에 따른 것이므로 '조합의 책임 있는 사유'로 보아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민법 제538조 제1항 (채권자위험부담주의): 쌍무계약에서 한쪽 당사자의 채무가 채권자(여기서는 용역 서비스를 제공받을 조합)의 책임 있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는 채무자(용역업체)는 상대방(조합)에게 자신의 채무 이행을 청구할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법원은 조합 설립인가 취소가 조합원 과반수의 해산 동의에 따른 것이므로, 이를 채권자인 원고 조합의 '책임 있는 사유'로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채권자의 책임 있는 사유'란 채권자의 어떤 행위나 소홀함이 채무자의 이행을 방해하고, 채권자가 이를 피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아 신의칙상 비난받을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법원은 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들의 과반수 의사 결정이 조합의 행위로 간주되어 조합의 책임으로 귀속된다고 보았습니다.
민법 제538조 제2항: 채권자의 수령 지체 중에 당사자 쌍방의 책임 없는 사유로 이행할 수 없게 된 때에도 제1항과 같으며, 이 경우 채무자는 자신이 채무 이행을 면함으로써 얻은 이익이 있다면 이를 채권자에게 상환해야 한다는 조항입니다. 원고 조합은 설령 조합의 책임이라고 하더라도, 피고 용역업체가 용역 이행을 면함으로써 얻은 이익(지출하지 않게 된 비용)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가 용역대금 전액을 청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고가 용역 이행에 소요되는 비용이 미지급 용역대금 이상임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피고가 이행을 면함으로써 얻은 이익이 원고에게 반환해야 할 만큼 크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재개발 조합 등 단체의 계약에서는 구성원들의 의사결정이 단체 전체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특히, 조합원 과반수의 동의에 따른 해산과 같이 법령이 정한 절차에 의해 단체의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경우, 그에 따른 계약 이행불능은 단체 자체의 책임 있는 사유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계약을 체결할 때는 사업의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계약 해지 조건, 위약금 조항, 계약금 반환 조건 등을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특히, 법령 변경으로 사업 추진에 중대한 영향이 예상될 경우, 기존 계약의 존속 여부 및 내용 변경에 대해 상대방과 충분히 협의하고 서면으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계약 해제를 통보할 때는 계약서에 명시된 해제 조건을 정확히 확인하고, 적절한 절차와 시기에 맞게 이루어져야 법적 효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미 계약 이행이 객관적으로 불가능해진 상태에서의 뒤늦은 해제 통보는 그 효력을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