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타 금전문제 · 노동
주식회사 A는 주식회사 B와 주상복합시설 신축 사업에 대한 건축물 설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주식회사 A는 계약에 따라 설계 업무를 수행했으므로 약정된 설계비의 일부인 2억 7,060만 원을 지급할 것을 청구했습니다. 그러나 주식회사 B는 설계 계약이 주식회사 A의 사업 자금 차용을 정지조건으로 한 것이거나, 주식회사 A가 어떠한 설계 용역도 수행하지 않았으므로 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맞섰습니다. 법원은 주식회사 B의 정지조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주식회사 A가 실제로 설계 용역 업무를 제공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주식회사 A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피고 주식회사 B는 서울 금천구에 주상복합시설을 신축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원고 주식회사 A와 2015년 10월 7일 건축물 설계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총 계약금액은 27억 6백만 원이었습니다. 계약 체결 전 원고의 대표 H은 피고의 대표 G에게 1억 3천만 원을 빌려주고 사업부지 관련 대출 시 상환하며 건축설계는 H에게 발주한다는 내용의 이행각서를 받았습니다. 또한 H과 I는 사업부지 매수 자금을 위해 사채업자로부터 120억 원을 차용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피고는 사업 진행을 위한 자금을 확보하지 못해 결국 사업을 포기했습니다. 이에 원고는 2018년 10월 2일 피고에게 이 사건 설계 계약에 따라 전체 설계비의 10%에 해당하는 2억 7천6십만 원의 계약금을 청구했습니다. 피고는 원고가 자금을 빌려오는 것을 정지조건으로 한 계약이거나 원고가 설계 용역을 이행한 바 없으므로 대금을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서 법적 다툼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 설계 계약이 원고의 사업 자금 차용을 정지조건으로 하는 계약인지 여부 그리고 원고가 계약에 따른 설계 용역 업무를 실제로 수행하여 피고에게 용역대금 지급 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원은 원고 주식회사 A의 청구를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도록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피고가 주장하는 정지조건부 계약 주장에 대해, 처분문서인 계약서에 해당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고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가 이 사건 설계 계약에 따른 설계 용역 업무를 실제로 제공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즉 원고가 제출한 신축 계획안은 계약 체결 전 협의 용도로 작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를 피고에게 전달했다는 증거가 없었고 피고의 재정 상황 악화와 사업 포기, 그리고 사업부지 매각 등의 상황에서 설계도가 필요 없게 된 점, 원고가 계약일로부터 약 3년이 지난 후에야 대금을 청구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원고가 설계 용역을 이행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법원은 이러한 상황들을 미루어 볼 때 이 사건 설계 계약은 묵시적으로 합의 해제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며 설령 피고의 귀책사유로 업무가 중단되었다 하더라도 원고가 수행한 설계 업무가 없으므로 피고에게 용역대금 지급 의무가 없다고 최종적으로 판단했습니다.
본 판결은 도급계약, 특히 설계용역 계약에서의 대금 지급 의무와 관련된 법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 정지조건부 계약이란 어떤 조건이 성취되어야 계약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을 말하는데, 이러한 중요한 조건이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았다면 이를 주장하는 측이 그 존재를 입증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피고는 설계 계약이 원고의 사업자금 차용을 정지조건으로 한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계약서에 관련 내용이 없고 피고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둘째, 도급계약에서의 용역대금 지급 의무와 관련하여 수급인(용역을 제공하는 자)이 설계를 완성하지 못한 채 계약이 해제되더라도, 실제로 수행한 용역의 정도인 '기성고 비율'에 따라 용역대금을 정산해야 합니다(대법원 2013. 5. 24. 선고 2012다39769 판결 등 참조). 하지만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계약에 따른 설계 용역 업무 자체를 수행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기성고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셋째, 용역 수행의 입증 책임은 용역대금을 청구하는 원고에게 있습니다. 용역을 수행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자료와 상대방에게 전달했다는 증거가 필수적입니다. 마지막으로, 묵시적 합의 해제는 당사자들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고 상당 기간 방치하거나, 계약 목적 달성이 불가능해지는 등 여러 정황을 통해 계약을 더 이상 유지할 의사가 없다고 판단될 때 인정될 수 있습니다. 본 판례에서는 3년이라는 장기간 동안 대금 청구가 없었고 사업 자체가 무산된 점 등이 묵시적 합의 해제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계약서 작성 시에는 모든 중요한 조건과 합의 내용을 명확하게 명시해야 합니다. 특히 계약의 효력 발생이나 이행에 영향을 미치는 조건(예: 특정 자금 조달 성공 등)은 구두 합의가 아닌 계약서에 반드시 명확하게 기재해야 합니다. 용역 계약을 체결하고 대금을 청구할 때에는 자신이 수행한 용역 업무의 내용, 완성도, 그리고 결과물을 상대방에게 전달했다는 증빙 자료를 철저히 보관해야 합니다. 단순한 계획안이나 내부 작업 자료만으로는 용역 이행을 입증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계약 해제나 사업 중단 상황에서는 당사자들이 계약의 존속 여부와 기성고 정산 등 후속 처리에 대해 명확한 합의를 문서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용역대금 청구는 계약에서 정한 시기에 지체 없이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장기간 대금 청구를 하지 않을 경우 계약이 묵시적으로 해제되었다고 판단될 여지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