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험
E 주식회사 영업과장 D은 우울장애, 수면장애, 알코올사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배우자 및 아들과의 저녁 식사 후 다툼을 벌였고 모텔에서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여 사망했습니다. D의 배우자인 원고 A는 피고 B 주식회사(단체보험)와 피고 C 주식회사(공제계약)에 D의 사망보험금 및 공제금 지급을 청구했습니다. 피고들은 D의 사망이 약관상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D이 사망 직전 정신질환과 음주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여, 원고에게 피고 B은 3,540만원, 피고 C은 600만원 및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사망자 D은 2019년 12월 말부터 우울장애, 비기질성 수면장애, 조현양상장애, 공황장애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습니다. 2020년 1월 초에는 약물 복용으로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했습니다. 2020년 2월 9일, D은 배우자인 원고와 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술을 마신 후 다툼을 벌였습니다. 이후 모텔에 들어가 원고와 아들에게 여러 차례 전화하여 "이게 마지막 전화라고 생각해라. 어차피 너도 죽으라고 이야기 했잖아. 죽으라고 이야기 했으니까 죽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아.", "내일이면 초상집 될거다. 안 살거라니까 이미 나는 약 먹었다고. 이미 먹었어 마지막이야." 등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틀 뒤 모텔 객실에서 D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이에 D의 배우자인 원고는 피고 보험회사와 공제회사에 사망보험금 및 공제금을 청구했으나, 피고들은 D의 사망이 '고의적인 자살'에 해당하므로 면책사유에 해당한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여 소송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사망자 D의 자살이 보험 및 공제 계약에서 정한 면책사유인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였습니다. 특히, D이 정신질환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에도 면책사유가 적용되는지, 아니면 예외적으로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한 법리적 판단이 필요했습니다.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여, 피고 B 주식회사는 원고에게 3,540만원, 피고 C 주식회사는 6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또한, 각 돈에 대하여 2020년 6월 16일부터 2022년 5월 11일까지는 연 6%의 이자를, 그 다음 날부터 모두 갚는 날까지는 연 12%의 이자를 지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소송 비용은 모두 피고들이 부담하도록 했습니다.
법원은 사망자 D이 정신질환과 음주 등으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인정하여, 보험사 및 공제사의 보험금 지급 면책 주장을 배척하고 D의 상속인인 배우자에게 보험금과 공제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의 주요 법리는 사망을 보험사고로 하는 보험계약에서 자살을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는 경우에도, 피보험자가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망의 결과를 발생케 한 경우에는 보험금 지급 면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2015. 6. 23. 선고 2015다5378 판결 등)에 따랐습니다. 보험약관 제5조 제1항 제1호 및 공제약관 제18조 제1항 제1호에 따르면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되어 있으나, 단서 조항이나 예외 규정으로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자신을 해친 경우' 또는 '정신질환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사실이 증명된 경우'에는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자살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는지 판단할 때 자살자의 나이, 성행, 신체적·정신적 심리상황, 정신질환의 발병 시기 및 경과, 자살 직전의 구체적인 상태, 주변 상황, 자살 행위의 시기, 장소, 동기, 경위,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의료감정원의 회신과 D의 정신과 병력, 음주 상태, 직전 통화 내용 등을 종합하여 D이 우울증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한 것으로 판단하여, 면책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만약 가족이나 지인이 정신질환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 보험금 청구 시에는 피보험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과 진료 기록, 입원 기록, 약물 복용 이력 등 의료 관련 자료를 철저히 보관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사망 전의 행적,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 유서의 유무, 평소 성격 변화 등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와 당시의 심리 상태를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음주나 약물 복용이 자유로운 의사 결정 능력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학적 소견은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보험 약관에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면책 조항이 있더라도,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는 예외로 인정될 수 있음을 알아두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