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금
철강제품 등을 판매하는 A 유한회사가 양식장 공사를 시공하는 E의 요청으로 물품을 공급하고 매출 세금계산서는 E의 지인인 C(피고) 명의로 발행되었습니다. A 유한회사는 C에게 미지급된 물품대금 8,601만 4,300원 및 지연손해금을 청구하였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C이 물품 공급 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며 상법상 명의대여자 책임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A 유한회사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습니다.
A 유한회사는 2021년 10월 6일부터 2022년 6월 22일까지 E이 시공하는 양식장 신축공사 현장에 9,908만 2,300원 상당의 철강제품 등을 공급했습니다. 이 물품에 대한 매출 세금계산서는 E의 지인인 C의 개인사업자 'N' 명의로 발행되었습니다. A 유한회사는 전체 물품대금 중 1,306만 8,000원만 지급받고 나머지 8,601만 4,300원을 받지 못하자 피고 C이 물품공급계약의 당사자이거나 또는 E에게 명의를 대여해 주었으므로 미지급 물품대금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 C은 자신이 E에게 물품대금을 빌려주고 세금계산서 명의만 제공했을 뿐 원고로부터 물품을 공급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명의를 대여해 준 사실이 없으며 설령 명의대여가 인정되더라도 원고가 명의대여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으므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피고 C이 이 사건 물품공급계약의 실제 당사자로서 미지급 물품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와 설령 C이 직접 계약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E에게 명의를 빌려주어 상법상 명의대여자 책임을 져야 하는지 여부입니다.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원고 A 유한회사의 피고 C에 대한 청구를 모두 기각하며 소송 총비용은 원고 A 유한회사가 부담한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 A 유한회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 C이 물품공급계약의 당사자였다거나 계약 체결 당시 E의 영업이 C의 영업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이 존재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원고가 E의 지급능력에 우려를 표하며 건축주와 직접 지급 합의를 한 점, E 이외의 C에게 거래 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점, C이 계약 당사자로 기재된 계약서가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C을 실제 계약 당사자로 보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C이 E에게 명의를 빌려준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원고가 E의 이례적인 거래 방식(여러 사업자 명의 사용)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원고는 명의대여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다고 보아 상법상 명의대여자 책임 역시 인정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상법 제24조(명의대여자의 책임)가 핵심 법리로 다루어졌습니다. 상법 제24조는 '타인에게 자기의 성명 또는 상호를 사용하여 영업을 할 것을 허락한 자는 자기를 영업주로 오인하여 거래한 제3자에 대하여 그 타인과 연대하여 변제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리는 사업자 명의를 빌려준 사람(명의대여자)이 실제 사업자(명의차용자)의 영업이 자신의 영업인 것처럼 보이게 하여 거래 상대방(제3자)이 명의대여자를 실제 영업주로 오인하게 했을 때 명의대여자가 명의차용자와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는 거래의 안전을 보호하고 명의대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로부터 선의의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명의대여자 책임이 인정되려면 명의대여의 사실, 마치 명의대여자의 영업인 것처럼 보이는 외관 형성, 그리고 거래 상대방의 오인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거래 상대방이 명의대여 사실을 '알았거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한 경우에는 명의대여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이 사건에서는 원고가 E의 이례적인 거래 방식(여러 사업자 명의 사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보아 명의대여 사실을 알았거나 중대한 과실로 알지 못했다고 판단하여 피고 C의 명의대여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물품 공급이나 계약 체결 시 세금계산서 발행 명의가 아닌 실제 물품을 공급받고 대금을 지급할 주체가 누구인지 명확히 확인하고 가능하다면 해당 당사자와 직접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사업자 명의를 빌려주는 행위는 단순히 명의만 빌려주는 것을 넘어 실제 사업자로서의 법적 책임을 지게 될 수 있으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상법상 명의대여자 책임은 거래 상대방이 명의대여 사실을 몰랐을 때 발생합니다. 거래처가 자주 사업자 명의를 변경하거나 실제 사업자와 세금계산서 명의가 일치하지 않는 등 통상적이지 않은 거래 방식이 반복된다면 거래 관계의 투명성을 의심하고 더욱 철저히 실체를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의 주체, 물품의 인도 및 대금 지급 책임에 대한 명확한 증거(계약서, 확인서, 대화 기록 등)를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분쟁 발생 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데 유리합니다. 중요한 거래에 앞서 상대방의 자산 상황이나 지급 능력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단순한 구두 약속이나 다른 사람의 명의에 의존하기보다 담보 설정이나 보증 요구 등 추가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