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미국 정부의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법인이 제외되면서 반도체 장비 반입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개별 허가가 의무화됐다. 이는 중국 내 반도체 생산설비에 대한 미국산 장비 도입에 큰 제약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시안에 낸드플래시 공장, 쑤저우에 후공정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다롄, 우시, 충칭에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 생산 및 후공정 공장을 구축하여 전체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의 규제 강화는 국내 기업들이 현지에서 추진해 온 생산능력 확장 및 첨단 공정 도입에 걸림돌이 되어 기술 경쟁력 약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미 간 반도체 관세 협상이 한 달 이상 진행되었으나 아직 명문화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업계는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연합이나 일본과는 달리 최혜국 대우 협정서가 부재해, 트럼프 정부의 변덕스러운 정책 기조 속에서 높은 관세 부담이 지속될 수 있다. 이는 수출 경쟁력 약화뿐 아니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국내 기업의 입지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EU가 현재 15% 관세 상한선을 일정 부분 확보한 데 비해 한국은 불리한 협상 위치에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국내 대기업들이 바이든 행정부 시절 확정된 반도체 지원법(CSA)에 근거해 미국 내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였으나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기업 지분 참여를 요구하는 등 정책 방향을 바꾸면서 투자 자금 집행과 지원이 불투명해졌다. 인텔이 보조금을 지분 출자로 전환한 사례가 있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같은 조치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경영권 문제는 물론 기술 유출과 관련된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어 업계가 신중한 대응을 모색하는 상황이다.
현실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갈등 심화 속에서 국내 반도체 기업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국가별 규제 대응에 큰 압박을 받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일 열심히 해야죠"라는 발언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미국 현지 시장 점검 등은 위기 속에서도 지속 가능한 사업 전략 수립과 관계 기관과의 협력을 통한 조율 노력을 시사한다. 향후 업계는 정책 변화에 주의 깊게 대응하며 추가 투자 계획과 기술 개발에 있어 외교적, 법률적 요소를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상황은 국제무역법과 수출통제법, 관세법 등 복합적인 법률 쟁점들이 맞물려 있어 향후 분쟁 발생 시 관련 법률적 대응 전략을 준비하는 데 중요한 사례가 될 것이다.